정신질환 양지에서 치료받자 <4·끝>:보건소 정신센터 '동네 환자 도우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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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지난 23일 오전 10시 서울 성동구 보건분소에 자리잡은 정신건강센터. 주간 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한 20여명의 정신질환자들이 신문을 스크랩하고, 종이에 자신의 의견을 적어넣고 있다.

한시간 가량 진행되는 교육과정의 제목은 '뉴스 따라잡기'. 상상 속에 사는 이들에게 현실감각을 익혀주고, 논리적인 사고를 키워주는 것이 목적이다.

날씨 관련 기사를 스크랩한 이모씨는 "일기예보가 맞지 않아 데이트를 망쳤다"며 "기상청 발표를 믿어야 되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다음 시간은 농장 실습. 서울 뚝섬에 있는 실습지를 찾아 자신들이 키운 야채를 솎아주며 협동심과 성취감, 자연친화적인 심성을 키운다.

성동정신건강센터는 정신과 환자의 재활을 위해 보건소 내에 설치된 전국 48곳의 정신보건센터 중 하나. 1998년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센터와 협약, 지역사회에 흩어져 있는 정신질환자의 재활·교육기관으로 출범했다.

센터의 업무는 정신질환자의 발견 및 등록→가정방문→주간 재활→직업재활로 이어진다.

팀을 이끌고 있는 허태자 간호사는 "환자들을 오랫동안 집에 방치해 이들을 밖으로 나오게 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며 "환자가족들조차 아직도 전문적인 재활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아 환자 발견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성동정신건강센터가 4년여 관리해온 정신질환자는 4백여명. 이중 50여명이 임시취업장에서 직업재활 훈련을 받고, 다섯명은 직업을 가졌거나 기술자격증을 취득해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폭력성이 심해 입퇴원을 반복하며 삶의 질곡에 빠져 있던 이모(45)씨는 센터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재활에 성공, 2년째 기계부품 제작회사를 다니며 안정을 되찾았다.

허간호사는 "정신건강센터는 환자에게는 물론 가족에게 정신적인 여유와 여가활용을, 지역사회에는 방치된 환자 관리를 통해 안전을 제공하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자들에게 제공되는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정신보건 요원과 동행해 영화관이나 박람회 등을 참관하는 지역사회 방문,우체국·동사무소 등 공공기관 이용법을 익히는 사회기술 훈련, 약물복용의 중요성과 부작용을 알려주는 약물 증상교육 등이 매주 되풀이된다. 컴퓨터 교육도 실시해 환자들은 문서작성에서 인터넷 사용도 가능할 정도.

그러나 정신보건센터를 활성화하는데 장애요인도 많다. 아직 정부 기관으로 인정받지 못해 전문인력이 계약직이어서 법적인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는 데다 봉사 수준의 낮은 처우 때문에 이직률이 높다는 것.

보건사회연구원 서동우 박사는 "매년 등록환자 증가와 사업영역 확대로 업무가 늘어나는데도 예산이 5년째 동결돼 있다"며 "지자체와 국민건강증진기금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정신보건센터를 법적 기관으로 승격시키고, 예산도 정부 일반예산으로 지원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종관 의학전문기자

kojok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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