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쓰는 데도 도 있다” 리카싱 기부철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워런 버핏·빌 게이츠 등 미국 최고 갑부들의 기부 행렬에 발맞춰 홍콩 최고 부자인 리카싱(李嘉誠·82·사진) 청쿵실업 회장도 야심찬 기부 계획을 내놓았다.

리카싱 회장은 5일 상반기 실적 발표회에서 자신이 세운 리카싱자선재단이 30년간 기부한 액수보다 더 많은 돈을 앞으로 10년 동안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 명보는 리 회장이 지금까지 100억 홍콩달러(약 1조5000억원)가 넘는 돈을 재단에 희사했다고 전했다.

리 회장은 “다음 달 인터넷과 관련된 새로운 공익 프로그램이 시작될 것”이라며 “첫 2년 동안 각각 10억 홍콩달러가 투입된다”고 소개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2월호에 따르면 리카싱의 재산 규모는 213억 달러(약 24조8000억원)에 달한다. 리 회장은 1980년 자선재단을 설립해 교육·의료·학술 분야에 해마다 거액을 기부해 왔다. 최근 3년간 사회에 환원한 금액만 52억 홍콩달러에 달한다. 아시아의 기부 문화를 이끌고 있는 리 회장의 기부 철학은 ‘돈을 쓸 때도 도가 있다(用之有道)’는 말로 압축된다. 이날 발표회에서 리 회장은 “나는 재물을 탐하는 사람이 아니다. 재산을 불릴 때도 도리에 따라야 하며 쓸 때도 도가 있어야 한다”며 자신의 기부 소신을 설명했다.

게이츠와 버핏이 주도하는 ‘기부약속’ 운동에 동참할 의사가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아직 건강하다”며 독자적인 길을 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두 아들을 둔 리 회장은 자선재단을 ‘셋째 아들’로 간주했다. 그는 “셋째 아들은 빚진 게 없기 때문에 세 아들 가운데 가장 돈이 많다. 내 자산의 3분의 1은 셋째 아들 몫인 셈”이라고 말했다.

광둥성 차오저우(潮州) 출신인 리 회장은 중국을 중심으로 자선 활동을 해왔다. 낙후한 곳에 기반 시설을 짓도록 돕고 학교를 세웠다. 홍콩에서 사업을 일으켰지만 자신의 뿌리에 대한 신념이 강해 대륙에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는 것이다. 이런 친중국 활동을 바탕으로 역대 중국 지도부와 탄탄한 신뢰관계를 맺으며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가로도 대접받고 있는 그는 다음 달 CNN·BBC를 통해 전 세계에 방송되는 중국 국가이미지 광고에 출연한다.

마윈(馬云) 알리바바닷컴 회장,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야오밍(姚明), 중국 첫 우주인 양리웨이(楊利偉), 세계적 피아니스트 랑랑(郞朗) 등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각계 명사들이 함께 나온다.

홍콩=정용환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