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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전자화폐 첫선 사이버결제는 아직 먼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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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전자화폐의 원년(元年), 세계 화폐사를 바꾼 해'.

전문가들은 1995년을 이렇게 부른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개념의 화폐 형태가 등장해 3천년이 넘는 인류의 화폐 역사에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한다.

그해 10월 23일 미국 마크 트웨인 셰어스은행은 온라인상에서 현금 결제가 가능한 전자화폐 서비스를 시작했다. 고객은 특수암호로 처리된 동전을 하드 드라이브에 다운받아 온라인에서 사용했다. 이 동전을 받고 물건을 판 사람은 은행에서 실물화폐로 바꿨다.

이 기술을 개발한 네덜란드의 디지캐시는 열한달의 시범 서비스 끝에 성공을 확신했다. 회사 측은 "특수암호 처리로 해커들이 쉽게 침입하지 못할 것"이라며 안전성도 자신했다.지금도 이캐시(E-Cash)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이것이 세계 최초의 사이버 화폐로 기록됐다.

전자화폐는 크게 두 가지다.이캐시처럼 온라인에서 결제되는 네트워크형과 일반 신용카드 모양에 반도체칩을 내장한 IC카드형이 있다. IC카드형은 편리해 스마트 카드로도 불린다.

95년이 전자화폐의 원년으로 불리는 것은 단지 네트워크형 전자화폐가 처음 쓰여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IC카드형 전자화폐는 이미 석달 전에 상용화됐다. 세계 최초로 IC카드형 전자화폐를 개발한 영국 몬덱스사가 영국 내셔널 웨스터민스트은행·미들랜드은행·브리티시 텔레콤과 손잡고 시험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해 7월부터 영국 남부의 작은 도시 스윈던에선 실물화폐가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그래서였는지 95년 당시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머지않아 지폐와 수표가 사라지고 수십종의 신용카드가 하나의 카드로 대체되는 새로운 시대가 오리라는 주장이 대세를 이뤘다.디지캐시는 곧 온라인 거래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했고, 몬덱스는 이듬해 전자화폐를 영국 전역으로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크게 빗나갔다. 아직도 전자상거래의 결제는 신용카드가 주류를 이루고, 스마트카드 대신 신용카드와 현금이 지갑을 지키고 있다. 전자화폐에 대한 개념조차 통일되지 않아 전자화폐의 발행액 추정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전자화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네트워크형은 위조와 변조·도용 가능성이 크고, IC카드형은 소비자 정보가 노출된다는 약점이 있다.

그럼에도 전자화폐가 새로운 화폐 시대를 열 것이라는 점을 부정하는 이는 없다. 전자상거래가 급증하는데다 쓰임새가 편리하기 때문이다. 업체간 경쟁도 뜨거워 국내에서만 10여개 회사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하루 빨리 전자화폐를 통화지표 산정에 포함하고 '전자금융거래법'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재광 경제연구소 기자

i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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