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風 주춤… '빅3' 전략 바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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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대선 '빅3'간 역학구도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민주당 노무현(盧武鉉)대통령후보와 '국민통합 21'의 정몽준(鄭夢準)의원 지지율에 미묘한 움직임이 생기면서 3자의 선거전략도 달라지는 양상이다.

최근 언론사 여론조사에선 오차범위 이내이긴 하지만 '정풍(鄭風·정몽준 바람)'이 다소 꺾이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흐름이 포착됐다. 상대적으로 李·盧후보는 약간의 오름세로 조사됐다.

당장 鄭의원에게 갈 것 같던 민주당 '반노(反盧·반 노무현)파'의원들의 움직임이 둔화되고 '비노(非盧)파'의원들이 盧후보 쪽으로 선회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

이같은 흐름은 3자의 선거전략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李·盧후보에겐 공통의 적(敵)이 '정풍'이다. 李후보로선 鄭의원과 양자대결할 경우의 위험한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盧후보로선 당장 당내 의원들의 탈당 움직임을 잠재우기 위해서도 鄭의원을 공격해야 했다.

한나라당 김영일(金榮馹)사무총장은 23일 "鄭의원의 지지율 하락으로 '4자연대'가 무산되자 鄭의원이 갈팡질팡하고 있다"고 공세를 폈다. "구(舊)정치세력과 연대가 잘 안되자 '연대란 없다'며 표변하는 행태야말로 정치개혁 대상"이라고도 했다.

민주당 임채정(林采正)정책본부장은 "鄭의원이 모든 대북 경제교류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한 것은 그가 평화적 민주개혁세력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라며 "국민은 검증되지 않은 후보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李후보에겐 '정풍'이 약화돼 鄭의원과 盧후보의 지지율이 엇비슷하게 움직여 주는 게 최선이다. 1강(强)2중(中)구도라면 盧·鄭의 후보 단일화도 어렵고 반(反)이회창 세력도 분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뜻대로 안될 수도 있다는 점이 문제다. 당 대선기획단은 최근 "鄭의원을 공격하되 한계를 넘으면 안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李후보에게 냈다고 한다. "鄭의원 지지율을 너무 떨어뜨릴 경우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이 다시 불어 李·盧후보 대결구도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란 이유에서다.

한나라당의 鄭의원에 대한 공격 자제 시점은 盧·鄭후보의 지지율이 비슷해질 때라고 한다.

盧후보의 당면목표는 다자대결에서의 2위 탈환이다. '정풍'을 앞서면 '노풍'이 재점화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해찬(李海瓚)기획본부장은 "鄭의원 지지도가 3∼6%포인트 하락하고 盧후보 지지도는 수도권과 부산·경남에서 약간 상승하는 추세"라며 "앞으로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鄭의원으로선 2강 구도를 유지하는 일이 급하게 됐다. 그동안 이미지 고양에 힘쓰느라 자제해온 네거티브 공세를 구사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23일 "한나라당 현역의원은 1백42명이나 되는데도 수도권과 충청·강원지역에서 李후보 지지도는 나보다 낮다. 이는 한나라당이 낡은 정치세력이기 때문"이라며 포문을 李후보에게 집중했다.

반면 盧후보에 대해선 일단 '무시'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강자끼리 맞붙어 양강 구도를 이어간다"는 의도에서다.

이상일 기자

le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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