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의 월드 뷰] 미 보수층 약점은 한국 이해 못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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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만약 한국 사람들이 지난번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투표권을 가졌더라면, 틀림없이 대다수가 보수주의자 조지 W 부시가 아닌 존 케리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졌을 것이다. 내 말이 맞는 말인가?

한국 사람들의 눈에는 두 후보가 아주 대비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경제분야에서 민주당원은 전통적으로 일종의 보호무역주의로 치우치는 성향을 보여왔다. 그들은 심지어 미국의 경제활동에 위협이 되는 몇몇 수입품에 대해선 '교역의 문'을 닫자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외교분야에서, 케리는 과거 빌 클린턴이 그랬듯이, 국제적인 대화 당사자들의 선의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는 북한까지 포함해 모든 사람과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 행동이다. 부시는 이와는 반대로 자유로운 경제교역을 신조로 한다. 상품의 자유로운 교역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는 이민자들의 자유로운 유입도 미국과 세계를 위해 좋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북한과 협상하는 것은 어떤가? 부시는 전제국가들, 그중에서도 특히 북한체제를 가장 경멸한다. 또한 유엔처럼 비민주적인 기구에도 반대한다. 사담 후세인, 그리고 이란 정부와 마찬가지로 부시는 북한체제와도 협상을 통해서는 항구적이고 진정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에 따르면, 이들 세 체제는 힘을 동원할 때만 말귀를 알아듣는 집단이다. 그리고 이들 체제에 대한 전쟁은 항상 동원 가능한 수단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공화당원과 민주당원의 이렇게 구별되는 이데올로기를 감안할 때, 한국 사람들에게 어떤 대통령이 최선의 선택이 될까? 객관적으로 본다면 아마도 부시가 맞을 것이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한국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 한국은 지구촌 다른 지역에서도 본받아야 할 성공의 모델로 비치고 있다.

한국의 모델은 독일.대만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이라크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떠올려지고 있다. 그것은 미국이 어떻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세계 곳곳에 수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본보기로 여겨진다. 그들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고 하는 보편적인 개념이 모든 문명에 통합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복잡한 문제를 놓고 여기서 논쟁을 벌이자는 얘기가 아니다. 단지 1950년 한국에 먹혀들었던 것이 2005년 이라크에서도 반드시 반복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얘기하고 싶다.

여기서 정작 중요한 것은 미국의 이라크 개입과 관련해 부시 정부의 머릿속에서 한국이 갖는 의미가 더욱더 부각된다는 점이다(미국의 '작품'인 한국이 잘 돼야 이라크 개입의 정당성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모든 것이 한국의 경제성장을 도와주는 쪽으로 결정될 것이다. 한국의 수입에 장애요인이 있다면 제거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시장경제를 채택한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도 언제 오를지 모르는 달러의 흐름에 적응해야만 한다(시장경제 체제에서는 마냥 도와주고 싶어도 인력으로 못다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 정부에 있어서는 북한문제가 이라크.이란과 함께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란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구촌 차원의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될 때부터 이 세 나라가 '악의 축'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부시는 아직까지 이러한 생각을 바꾸지 않았고, 콘돌리자 라이스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상태에서 한국은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

미국 정부는 김대중 정권이 시작하고,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계승되고 있는 개방정책에 적대적이지 않다. 하지만 미국은 이 정책의 결과에 대해 어떠한 환상도 갖고 있지 않다. 북한을 무장해제시키고, 북한체제가 합리적인 체제가 되게 하며, 남북한을 통일하는 것은 개방정책이 아니다. 북한의 위협에 대한 해결책은-미국 사람들은 많은 한국 사람보다 북한의 위협을 훨씬 더 심각하게 생각한다-부시 정부에 따르면, 중국 사람의 손으로 넘어갔다. 중국 사람들은 남북한 분단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다. 만약 중국 사람들이 북한을 포기한다면 북한은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향후 4년간 부시의 모든 정책은 과연 어느 단계까지 중국에 압력을 행사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요약될 수 있다. 지나치게 압력을 행사한다면 중국 사람들을 언짢게 만들 뿐만 아니라 중국 내 미국의 경제적 이권이 위태로워지고, 대만까지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한 압력은 중국 사람들이 북한을 포기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 첫번째 압력의 조짐이 태평양 미 해군함대의 재편성을 통해 나타났다. 중동에 평화가 정착되고 나면, 미군의 다음 임무는 중국에 대항해 동맹국인 일본.한국.대만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일관성 있는 미국의 이러한 대응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요소가 빠져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 국민의 여론에 대한 고려다. 한국 정부의 대외적인 자주 의지나 한국 국민, 특히 젊은 세대에서 날로 늘어가는 반미감정도 미국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난 뒤 현실주의자가 됐고, 반미적인 수사를 버리고 이라크에 한국군대를 파견한 사실을 지적한다. 미국이 그에게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그리고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는?

한국에 있는 미국 관리나 저 멀리 미국 워싱턴에 있는 관찰자들은 그 점에 대해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들은 반미감정이 표면적인 것이며, 미군 주둔으로 인해 지급해야 할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국민, 특히 식자층 중 일부가 북한에 현혹된데 대해 미국 정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으로 판단한다. 물론 바로 여기에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대(對)한국 정책의 약점이 존재한다. 그들은 한국문화를 이해하려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이 자기들에 대해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대응하면, 미국 지도자들은 비서양적인 문화적 관행에 따라 이러한 행동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결코 기울이지 않은 채, 한국 사람들이 비이성적이라고 결론지어 버린다.

부시 대통령의 대 한국 정책은 물론 합리적이다. 하지만 워싱턴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것이 서울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합리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으며, 북한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문화적 오해가 언제든지 미국과 한국의 관계를 어긋나게 할 수 있다.

정리=박경덕 파리 특파원

*** 기 소르망은

▶ 1944년 프랑스 출생

▶ 64년 파리정치학연구소 박사

▶ 69년 국립행정학교 졸업

▶ 1970~2000년 파리정치학 연구소 교수

▶ 르 피가로 등 신문 칼럼니스트로 활약

▶ 현재 파리 근교 불로뉴-빌랑쿠르시 부시장

▶ '최소국가' 등 스테디셀러 20여권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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