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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연출가 임영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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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진 연출가 임영웅(66·사진)씨의 가을 신작의 테마는 '여성'이다. 임씨는 "대조적인 삶을 산 30대 두 여자의 이야기"라고 신작을 소개했다. 그 이야기는 연극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29일∼12월 29일, 소극장 산울림)이다. 지난해 나온 김형경의 소설을 방송작가 전옥란이 각색한 작품이다. '사랑 불능, 성 불능, 삶의 불능'에 빠진 친구 세진(이항나)과 인혜(박지오)가 주인공이다.

임씨는 나이로 보면 '남자를 하늘같이 모셔야 한다'는 전근대적 여성관에 빠져있을 법한 구세대다. 그러나 그는 진보적인 여성관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여성연극을 통해 이를 보여주려고 한다.

'위기의 여자'의 박정자를 비롯해 손숙·윤석화를 앞세운 여성 취향의 1인극 연출로 그가 주인인 산울림 소극장은 '여성연극의 산실'로 불리고 있다.

이런 일련의 작업에 대해 일부에서는 스타성을 앞세운 '여성관객 잡기'로 폄하하기도 하지만, 직접 극장 풍경을 체험하면 이런 말은 쑥 드러간다. 여성들이 보여주는 그 열광에 압도당하기 때문이다. 임씨는 지난해 원로 극작가 차범석의 '그 여자의 작은 행복론'을 통해 여성연극의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번 무대는 그런 '임영웅표' 여성연극의 연장선상에 있다. 임씨는 "작가는 여성의 삶과 심리를 아주 대담하며 리얼하게 터놓고 얘기한다"며 "궁극적으로 삶을 긍정하고 있어 더욱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연극은 어린시절 부모의 이혼과 대학시절 성폭행의 기억으로 내성적인 세진과, 성불능인 남편과 이혼하고 게임하듯 남성 편력을 하는 인혜가 정체성을 찾는 여정을 담았다.

이런 대조적인 두 여자를 통해 임씨가 표현하려는 바는 무엇일까. 임씨는 "현대의 편견과 제도가 얼마나 여성을 어렵게 하는가를 보여주려 한다. 그러나 좌절보다 극복하는 '인간'에 무게를 둘 것"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여성'이 아닌 '인간'이라고 했다. 그는 "남녀의 이분법이 아닌 인간주의적인 관점에서 볼 때 비로소 여성은 남자와 같은 크기로 설 수 있다"고 말했다. 하찮은 일일지 모르지만 임씨는 소극장 산울림의 공동대표로 부인(서울여대 오증자 교수)을 올려 놓고 있을 정도로 가정에서도 평등주의를 지향한다.

임씨와 김형경과의 만남은 이번이 두번째다. 1996∼97년 손숙의 '담배 피우는 여자'로 처음 만나 흥행 성공을 일궜다. 1인극이었던 당시와 달리 이번은 더욱 역동적인 다인극인 게 변한 점이다. 각색자인 전씨는 '담배 피우는 여자'에서 조연출을 맡았었다. 30대의 이항나와 박지오가 친구로 나오고,박용수와 안관영 등 두 중견 연기자가 각각 두 여자의 '관계남'으로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임씨는 한해에 서너작품을 거뜬히 하면서 노익장을 과시하는,거의 유일한 60대 연출가다. 최근에는 '갬블러'(신시뮤지컬컴퍼니)와 '처용'(울산광역시) 등 뮤지컬 연출까지 영역을 넓혀 활동하고 있다. 다작이면서도 그의 연출작은 늘 평균점 이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임씨는 "내 무덤은 곧 무대"라며 죽는 날까지 현장을 지키는 꼬장꼬장한 연출가로 남고 싶어한다.

공연시간은 화·목·금 오후 7시30분,수·토·공휴일 오후 4시·7시 30분,일 오후 3시,월 쉼. 1만5천∼2만원. 02-334-5915.

정재왈 기자

nicola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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