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작>日人 과학자 납치 꿈꾸는 세 남녀의 음울한 욕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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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로즈 호텔

아벨 페라라? 누구지? 페라라는 지명도 높은 감독은 아니다. 할리우드에서 작업하지만 이른바 대작영화, 돈 버는 영화를 만든 적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작가감독? 딱히 그렇다고 말하기도 곤란하다.

페라라는 오히려 문제적 감독에 가깝다. 값싼 예산으로 자신의 인장을 진하게 새긴 B급영화를 만들곤 한다. '복수의 립스틱'(1981년)에서 '퓨너럴'(98년)까지, SF에서 갱스터·형사물까지 연출했다. 개인적으로 페라라의 영화를 선호하진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는 퇴폐미와 과잉의 미학으로 똘똘 뭉친 문제작임엔 분명하다. '뉴 로즈 호텔'은 윌리엄 깁슨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이다.

일본인 과학자 히로시를 납치할 목적으로 폭스 등 세 남녀가 계획을 세운다. 그를 성적으로 유혹하자는 것. 히로시의 몸값을 지불하려는 세력이 나서지만 패거리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난다.

'뉴 로즈 호텔'은 음울하다. 영화는 성인 클럽에서 시작한다. 폭스는 그곳에서 샌디라는 여성을 점찍는다. 도발적이고 섹시한 여성이다. 일본인 과학자를 꾀기 위해 샌디는 '마이 페어 레이디'(64년)의 오드리 헵번처럼, 새로운 여성이 되기 위해 교육받는다. 매춘부가 그럴 듯한 여성으로 위장하는 것이다. 영화는 기억의 모티브를 강조한다.

샌디의 기억과 그녀 주변의 다른 남자의 기억은 뒤섞이고 관객은 무엇이 진실인지 혼란스러워진다. 후반부는 이제까지 영화 속 사건을 짜깁기한 것이라 더욱 모호하다. 샌디 역의 아시아 아르젠토(사진)는 이탈리아 공포물의 대부 다리오 아르젠토(감독·제작자)의 딸이다.

'뉴 로즈 호텔'은 아무런 희망의 조짐없이 퇴락과 절망을 향해 직행한다. 그것은 '내멋대로' 스타일리스트인 페라라의 특기이기도 하다. 원제 New Rose Hotel. 99년작.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평론가

sozin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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