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허리 등 안좋아 軍 면제되지만… 몸 고쳐 당당히 입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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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해 병역 신체검사에서 시력 때문에 보충역 판정을 받은 수원대 2년 강경원(21·신소재공학과)씨는 내년 2월 군에 입대할 예정이다. 주위에선 "시력이 조금만 더 나쁘면 군대에 안가도 된다"고 조언했지만 지난 여름 라식수술을 받은 뒤 재검을 신청해 현역 판정을 받았다.

경기도 가평에서 군복무 중인 권태경(21·건국대 휴학)이병도 라식수술을 해 군대에 갔다. 그는 "직장을 잡거나 사회생활을 하는 데 보충역이 장애가 될 것 같아 떳떳하게 군에 다녀오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근 청년실업이 심각해지고 검찰 수사와 국무총리 인사청문회를 통해 군복무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자신의 지병을 치료하거나 시력 등을 개선한 뒤 자청해 입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병무청 박희관 공보담당자는 "아직도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많지만 군복무를 사회생활의 필수 조건으로 여기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고 말했다.

◇"군대 보내주세요"=병무청은 16일 '질병치료 후 군복무 희망자'는 올들어 8월까지 4백66명이며 연말까지 8백명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1999년 2백54명과 2000년 3백70명 등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물론 이 통계에는 질병이 있는데도 이를 알리지 않고 군에 가는 사람은 빠져 있다.

실제로 서울 강남·명동 등지에 밀집한 라식 전문병원에는 군입대를 위해 수술을 원하는 청년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병원은 이런 사유로 수술받는 젊은층에 수술비를 깎아주고 있다. 명동에서 개업 중인 안과의사 배노영(42)씨는 "매월 2∼3명 정도가 병역 신체검사 등을 앞두고 라식수술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중졸 이하 학력 때문에 면제 또는 공익요원 판정을 받았지만 이후 학력을 쌓은 후 다시 현역 복무를 희망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병무청은 지난해 학력을 높인 뒤 입대한 사람이 1백84명이었으나 올 들어선 8월 말 현재 1백61명으로 이미 지난해 수준에 육박했다고 밝혔다.

◇이유=병역 당국은 최근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서 후보 자녀들의 병역 문제가 집중 거론되고 병역비리 수사가 이어지면서 젊은층에 군 문제를 깨끗이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99년 개정된 고위 공직자 병역공개법에 의해 주요 공직자들과 지방자치 의원 등 1만6천여명이 본인은 물론 아들·손자까지 병역상황을 공개하게 되면서 군대는 반드시 다녀와야 한다는 의식이 굳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 관계자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청년실업이 이런 추세에 한몫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서울대 학군단 관계자는 "취업이 상대적으로 잘 되는 우리 학교에서조차 학군단 지원을 위해 라식수술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소개했다. 허리 디스크로 군 면제가 가능했지만 군 입대를 위해 수술을 받았다는 대전 어느 대학의 학생 金모(21)씨는 "디스크 증세로 군대가 면제됐다고 하면 어느 회사가 뽑아주겠느냐"고 말했다.

윤창희·정용환 기자

thepl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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