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두 경제석학 서울서 세계경제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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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미국의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한 세계 경제의 중장기 전망은 여전히 밝다."(프레드 버그스텐 소장)

"디플레이션(경기침체를 동반하는 물가하락)에 대비하지 않으면 세계적인 경기침체는 피할 수 없다."(조셉 스티글리츠 교수)

세계 경제 전망을 놓고 석학들의 한판 논쟁이 서울에서 벌어졌다.

미국 경제학계를 대표하는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와 버그스텐 국제경제연구소(IIE) 소장이 16일 매일경제 주최로 열린 세계지식포럼에서 불꽃 튀는 논전을 벌였다.

특히 이날 오후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사회로 열린 토론에 공동 토론자로 참석해 각기 견해를 밝혔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세계은행 수석부총재를 역임하고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으며 버그스텐 소장은 미국 재무부 차관을 지냈다.

◇향후 경제 전망=스티글리츠 교수는 "현재 세계 경제에 디플레이션 압력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며 "미국 경제도 더블 딥(경기가 반짝 회복한 뒤 다시 침체하는 현상)을 염려할 것이 아니라 이같은 침체가 얼마나 지속될까를 걱정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증시 폭락에 따른 자본손실이 소비부진과 경기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버그스텐 소장은 "올 들어 4%선의 성장을 달성한 미국 경제가 중장기적으로도 10년 전의 두배 수준인 3.5∼4%대의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세계 경제도 안정성장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증시 폭락에 대해서도 "현재 바닥을 치고 있다"며 "금융과 실물 경제의 활황이 일치했던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증시만을 미국 경제전망의 잣대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현재 심각한 문제는 미국의 무역적자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달러 가치의 추가 조정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저금리는 유지되고 달러가치는 10∼20%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라크 전쟁의 영향=스티글리츠 교수는 "제한적인 전쟁이 될 이라크전은 세계 경제를 부양시켰던 제2차 세계대전과 다르다"며 "이라크전은 중동의 혼란, 유가 급등 등 부정적 요소가 훨씬 크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버그스텐 소장은 "1991년 걸프전 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선진국들이 보유한 12억배럴 규모의 전략적 비축유가 방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오히려 유가가 떨어지면서 세계 경제의 자극이 될 것"이라며 '호재(好材)론'을 주장했다.

◇한국 경제에 대한 조언=스티글리츠 교수는 디플레에 대한 대비를 당부하는 한편 최근 급증하는 가계부채를 통화정책만으로 해결하려 들지 말고 금리인상을 제약하는 고부채 가계의 비중이나 장기주택대출의 상환시기 조정 등 부채구조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또 세계화 경제체제에서는 미국 경제의 흐름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버그스텐 소장은 "한국은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한 나라"라며 이에 맞는 정책 대응을 주문했다.

그는 "세계 경제에 디플레 조짐이 있다고 해서 한국까지 디플레 정책을 펼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개인부채에 대한 최근 한국 정부의 대응은 옳았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홍병기 기자

klaat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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