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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1조 이상 남긴 M&A 마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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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2000년 5000억원 투자→2005년 1조6500억원에 지분 매각(매각 차익 1조1500억원, 세금 0원)'. 뉴브리지캐피털이 지난 10일 제일은행을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은행(SCB)에 팔기로 함에 따라 이같이 엄청난 차익을 남길 전망이다. 통상 법인이 이익을 냈을 때 이익의 25%를 법인세로 내야 한다. 하지만 뉴브리지는 한국에서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는다. 뉴브리지는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본거지를 둔 'KFB 뉴브리지 홀딩스'로 등록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말레이시아는 조세협약을 통해 이중과세를 금지하고 있어 뉴브리지는 말레이시아에 세금을 낸다.

뉴브리지는 제일은행 인수 당시 선진금융기법을 도입해 한국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현재 금융계의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모기지론(장기주택담보대출)을 도입하고 자산건전성 위주의 경영을 하는 등 금융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매각 값을 올리기 위해 단기 이익에만 치중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에 무엇을 남겼나=제일은행 매각 당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투자부적격'이었다. 막대한 부실채권을 보유하고 있던 제일은행은 당시 매력있는 금융회사가 아니었다. 이때 외국계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이 뉴브리지였다. 뉴브리지의 제일은행 투자는 그 후 국민.하나.외환.한미은행 등 국내 은행이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뉴브리지는 지난 5년간 제일은행을 비교적 잘 키웠다. 제일은행은 1999년 적자가 1조원에 달했지만 지난해 9월 말 현재 852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총자산도 30조원에서 47조원으로 늘어났다.

또 국내에서 처음으로 모기지론을 도입해 주택담보대출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은행 지점의 영역 파괴를 통해 은행원들의 경쟁을 유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특히 뉴브리지는 펀드 속성상 매각 가격을 높이는 데만 주력했을 뿐 국내 금융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당시 선도적인 기업금융 창구였던 제일은행이 뉴브리지에 인수된 뒤 소매금융에만 치중해 기업금융의 위축을 촉발했다는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제일은행의 기업여신은 50%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가계여신은 10배 이상 늘어났다. 이 같은 현상은 론스타가 인수한 외환은행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금융계의 분석이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지난해 8월 내놓은 '공적자금관리백서'에서 "단기 이익에 치중하는 펀드 속성상 은행산업 발전이라는 장기 과제에 충실할 수 없었고, 이에 따라 기업대출을 축소해 가면서 이익만을 위해 소매금융에 주력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제일은행 정상화에 투입한 돈이 17조6000억원이다. 이렇게 막대한 정부 지원을 받았다면 다른 곳에서 제일은행을 인수했어도 뉴브리지와 같은 실적을 올릴 수 있을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금융연구원 지동현 박사는 "자산 건전성 위주의 뉴브리지 경영 스타일은 다른 은행에도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쳤다"며 "이는 보는 시각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뉴브리지가 비판을 받는 것은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기여가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투자 영역 확대=국내에서 주요 기업의 인수합병(M&A) 거래가 있을 때마다 뉴브리지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뉴브리지는 2003년 10월 1조1700억원을 들여 하나로텔레콤 지분 39.58%를 확보했으며 지난해 말에는 하나로텔레콤이 국내 3위 초고속 인터넷 사업자인 두루넷 매각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뉴브리지는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뉴브리지는 지난해 말 삼성자동차 채권단과 CJ가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17.65%) 매각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후 실사 협조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기업공개(IPO)▶정밀실사(비밀유지협약서 체결 후 비밀 열람권)▶이사 선임▶정보 열람 등 네 가지 권리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창규 기자

◆뉴브리지캐피털은=1994년 미국계 사모투자펀드인 텍사스퍼시픽그룹(TPG)과 블럼캐피털이 아시아시장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설립한 사모투자펀드다. 주로 기업을 인수해 가치를 끌어올린 뒤 되파는 바이아웃(buy out) 펀드로 홍콩.상하이.도쿄.서울 등에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만 17억달러 이상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으며, 5000만달러 이상의 대규모 투자를 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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