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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엉터리 통계는 재앙을 부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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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요즘 무리하게 대출받아 아파트에 짓눌린 ‘하우스 푸어(House Poor)’가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이들의 초미의 관심은 DTI(총부채 상환비율) 규제 완화다. 하지만 지금의 40~50%도 느슨한 편이다. 선진국은 금융회사 스스로 30~35%의 DTI를 엄격히 적용한다. 정작 걱정해야 할 대목은 불안한 물가다. 물가가 오르면 금리가 오르고, 이자 부담이 늘면 부동산에 직격탄이다. 한국은행은 내년 소비자 물가가 3.4% 오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가안정에 목을 맨 한은은 물가가 관리 목표인 3%를 넘으면 기준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금리 정책의 기준이 되는 소비자물가지수다. 통계청은 주요 품목들의 가중치를 고려해 지수를 산정한다. 하지만 토지·주택은 투자로 간주돼 소비자물가 통계에서 아예 제외돼 있다. 전·월세만 13%의 가중치로 반영될 뿐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실수는 여기서 비롯됐다. 부동산 값이 치솟아도 물가는 꿈쩍 않는 착시 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거꾸로 부동산이 내려앉을 때는 정반대다. 특히 지금처럼 물가가 꿈틀대면 금리인상과 긴축정책이 동원되기 십상이다. 하우스 푸어들은 집값 하락과 이자 부담의 이중 고통에 신음하게 된다.

미국은 1983년부터 자가(自家)주거비라는 개념을 소비자물가에 도입했다. 집을 갖고 있어도 임대료를 내는 것으로 간주해 지수에 포함시켰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에서 부동산의 가중치는 42%에 이른다. 그런데도 미국은 서브 프라임 사태로 주저앉았다. 2%대의 물가 안정에 홀려 초저금리를 이어가다 버블 붕괴를 맞았다. 그래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있다. 미국처럼 자가주거비를 지수 산정에 포함시킨 일본·캐나다·호주 등은 그나마 글로벌 경제위기를 비켜갔다는 점이다. 자가주거비를 배제한 스페인·그리스·영국·아일랜드가 쑥대밭이 된 것과 비교된다.

우리의 부동산 통계는 종잡기 어렵다. 2007년에 서울 아파트 값은 20%가량 올랐다. KB전세지수는 10.9% 상승했다. 그러면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집세는 얼마나 올랐을까? 놀랍게도 1.1% 상승에 그쳤다. KB지수는 전세가 오르면 같은 단지 아파트가 모두 오른 것으로 간주한다. 반면 통계청은 신규 입주나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한 전셋값만 반영하다 보니 시장 흐름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다. 이런 통계를 맹신(盲信)해 기준 금리를 움직이면 현실과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상방위험(upside risk)을 무시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하방위험(downside risk)을 소홀히 할 소지가 다분하다. 실제로 수도권 아파트는 지난해 말부터 급락했다. 그러나 KB지수는 7월에야 처음 하락한 것으로 잡혔다. 더 큰 문제는 아파트값이 내려도 소비자물가는 오르는 현상이다. 소비자물가에 포함되는 전세가격이 올 들어 거꾸로 1.8%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런 통계를 앞세워 한은 주변에선 “부동산은 안정됐다. 물가가 오르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

정부는 5년마다 통계 기준을 재점검한다. 올해가 그런 해다. 한은과 통계청은 항상 “국제표준이 없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체감지수와 지나치게 동떨어진 통계는 과감히 손질해야 한다. “거짓말에는 세 가지가 있다. 그냥 거짓말과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150여 년 전 영국 정치가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말이다. 통계를 의심하고, 믿지 못할 통계는 믿지 말라는 의미다. 엉터리 통계가 재앙을 부르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논설위원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