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아시안게임>육상:이진택 높이뛰기 2연패 '금빛 내조' 있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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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높이 날고 싶었다. 마음같아선 키의 갑절이라도 훌쩍 뛰어넘을 것 같았다. 그러나 육상 남자 높이뛰기의 1인자 이진택(30·대구시청)도 나이를 감당할 순 없었다. 그가 넘을 수 있는 바의 높이는 점점 낮아져갔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2m27㎝의 기록으로 우승했던 기쁨도 잠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선 2m20㎝도 넘지 못하고 예선탈락했다. 지난해부터는 후배 배경호(안동시청)가 그를 무섭게 위협해왔다.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외롭고 힘든 나날이 계속됐다.

그때 여자 높이뛰기 선수 김미옥(27)이 그에게 다가왔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아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도 마세요. 그냥 묵묵히 훈련에만 열중하면 결과는 저절로 따라와요."

후배의 당돌한(?) 조언이 이상하게도 기분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그는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김미옥이 도와주기로 했다. 심리치료도 받았다. 둘은 서로를 다독이며 '높이뛰기 데이트'를 했다.

그리고 이진택은 10일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벌어진 남자 높이뛰기에서 재기에 성공했다. 자신의 최고기록(2m34㎝)과 4년 전 방콕 대회 때의 우승기록에는 못미치는 기록(2m23㎝)이었지만 여전히 아시아에선 그의 적수를 찾을 수 없었다.

김미옥은 이진택이 금메달을 따내는 순간 스탠드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김미옥은 13일 여자 높이뛰기에 출전한다. 그때는 이진택이 스탠드에서 그녀를 지켜볼 것이다.

이제 이진택의 목표는 97년 자신이 세운 한국기록을 경신하고, 내년 세계선수권과 아테네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 그는 "은퇴한다는 소문은 낭설이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택·김미옥 '높이뛰기 커플'은 오는 12월 22일 웨딩마치를 올릴 예정이다.

한편 이진택과 함께 출전한 김태회(29·정선구청)는 2m19㎝를 넘어 왕주주·쿠이카이(이상 중국)와 함께 공동 은메달을 차지했다.

여자 1천5백m에서는 '제2의 임춘애'로 불리는 한국 중거리의 유망주 노유연(15·간석여중)이 역주했지만 뒷심 부족으로 5위(4분15초91)에 머물렀다.

남자 1백m에서 금메달을 따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마크흘드 알 오타이비는 남자 5천m에서도 13분41초48의 기록으로 1위로 골인해 이번 대회 육상 첫 2관왕이 됐다.

부산=특별취재단

sports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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