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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지어 예술혼 기린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화가 박수근(1914∼65)과 조각가 김종영(1915∼82)은 한국에 현대 미술의 씨를 뿌린 1세대 작가들이다. 가난과 고독 속에서 홀로 제 길을 걸어갔던 두 사람의 미술관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문을 연다. 이들이 살아 있을 때 무심했던 세상은 이제 두 거장을 기리는 집을 짓고 그들을 그리워한다.

오는 25일 강원도 양구군 양구면 정림리 박수근의 생가 터에 개관하는 박수근미술관은 양구군이 공사비 21억원을 들여 마련한 기념관이다.

'육지 속의 외딴 섬'이라 불릴 만큼 오지였던 양구가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를 낳았다는 건 군민들의 자랑거리라 할 만하다. 그만큼 이 미술관에 쏟는 지역민들 정성이 대단해 군청은 추경 예산을 확보해서라도 소장품을 늘려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박수근(朴壽根)은 화강석처럼 거칠거칠한 회갈색 화면에 이 땅 서민들 옆 모습을 적막하고 고즈넉하게 도상화했다.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던 박수근은 나목(裸木)같은 지상에서의 삶을 쉰한 살로 일찌감치 마감하고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남았다.

생전에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던 이들이 그가 죽고 나자 그림값을 천정부지로 올리기 시작한 건 역설이다. 양구군은 단 한 점이라도 박수근의 유화를 사려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5억원대로 올라선 가격 때문에 결국 작품을 구입하지 못하고 유품과 드로잉·스케치·판화로 소장품 목록을 채웠다.

하지만 미술계에서는 박수근의 기념관에 그의 유화 원화가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양구 군립 박수근미술관 추진위원회' 추진위원인 박명자(갤러리현대 대표)씨는 "몇 억대로 껑충 뛴 유화들을 기증받는다 해도 보안장치며 그 관리가 더 큰 문제가 된다"며 "박수근을 기념할 수 있는 전시 조직이나 연구, 작품 복제 사업 등에 예산을 분배해 고인의 그림 세계를 제대로 알리는 구심점 구실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현대 조각의 선구자로 꼽히는 우성(又誠) 김종영(金鍾瑛) 미술관은 그의 20주기 기일인 12월 15일께 서울 평창동에 간판을 내건다. '우성 기념사업회'(회장 백문기)와 유가족들이 마련한 이 미술관은 작가의 기념관이자, 젊은 조각가들을 위한 전시 공간으로 쓰임새가 넓다.

우성의 제자로서 이번 미술관 개관에 힘을 쏟은 조각가 최종태(서울대 명예교수)씨는 "김종영 선생은 손재간이 빼어나고 현대 조각에 대한 생각도 심오했으나 중처럼 살았던 은둔자였기에 김종영이라는 조각가가 있다는 것조차 아는 사람이 흔치 않았다"고 회고했다.

'3·1 독립 선언탑' 조형물을 만들었고 말년에는 순수한 조형에 대한 자각과 통찰을 향해 추상 조각으로 나아갔던 그는 수천 점의 드로잉과 40여점 작품에 그의 선비 같던 일생을 남겼다.

이번 개관기념전에는 호암미술관과 원화랑,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과작 거의 전부가 나온다.

최씨는 "자신을 버리고 교육자로 살았던 스승의 뜻을 잇기 위해 앞으로 후배 조각가들 초대전과 기획전 등으로 미술관 운영 틀을 삼겠다"고 말했다.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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