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혼 ‘대북 제재 패키지’는 … 북한만 콕 찍은 ‘맞춤형 제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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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아인혼 미 국무부 대북한·이란 제재 조정관이 2일 정부와 대북 제재 방안을 직접 조율하면서 미국의 추가 조치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로버트 아인혼 미 국무부 대북제재 조정관(오른쪽)과 대니얼 글레이저 미 재무부 테러금융·금융범죄 담당 부차관보가 2일 서울 남영동 미 대사관 공보원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귀엣말을 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수주일 내에 행정명령 형식으로 발표될 대북 제재 패키지의 핵심은 미국이 처음으로 북한만을 표적으로 한 포괄적 법령을 내놓는다는 점이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을 테러지원국·적성국으로 지정하고 광범위한 제재를 시행해 왔으나 이는 다른 나라들까지 포함된 수십 개의 법령을 통해서였다. 이들 대북 제재 조치들을 하나의 행정명령에 포괄하면서 추가적인 제재 조치까지 담는 것이 아인혼 조정관이 들고 온 대북 제재 패키지의 핵심이다. 이 새 행정명령에는 북한의 재래식 무기 수출, 사치품 구입, 위폐·마약 거래 등 각종 불법행위와 연루된 실체들이 구체적으로 명시된다. 그런 만큼 미국의 개인·업체는 물론 제3국 정부·업체도 이들 실체와의 거래 단절 압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정부 당국자는 “한마디로 여러 갈래로 나뉘어 복잡하기 짝이 없던 대북 제재가 일목요연하게 하나의 행정명령으로 집대성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은 이미 대량살상무기 확산 관련자들을 제재하는 기존 행정명령 13382호 및 관련 법령을 통해 북한 기관과 법인 23개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해 놓은 상태다. 새 행정명령에 따른 제재 대상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최소한 수십 개가 지정될 것으로 관측된다. 제재 대상 일부는 아인혼 조정관의 설명대로 기존의 행정명령 대상과 겹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새 대북 제재는 북한의 정권 교체가 아니라 북한의 행태 변화, 즉 진정성 있는 비핵화 유도에 방점이 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인혼 조정관이 이날 “북한이 도발을 자제하고 비핵화 의지를 보인다면 강한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 “압박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비핵화가 더 도움이 된다는 점을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지적이다. 정부 소식통은 “이번 제재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대응 성격도 있지만 한·미는 장기적으로 북한의 비핵화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고 전했다

◆효과=곧 모습을 드러낼 행정명령은 제3국 금융기관에는 구속력이 없다. 그러나 국제금융권에서 미국이 갖는 힘을 감안하면 웬만한 규모를 갖춘 금융기관이라면 자진해 행정명령에 적시된 북한 기관·법인·개인과 거래를 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새 제재 시행 시) 북한 경제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 이유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유럽에선 상당 부분 계좌를 빼낸 것으로 전해진다. 대부분 가·차명계좌로 돼 있어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특히 북한이 중국의 소규모 은행으로 돈을 빼돌렸을 경우 중국 당국의 협조 없이는 제재가 힘들 것이란 우려도 있다. 아인혼 조정관이 이달 말 중국을 방문해 설득에 나선다는 방침은 이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글=강찬호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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