映振委가 질 수밖에 없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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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영화진흥위원회는 전임 부위원장 조희문 교수에게 2년 간 밀린 임금을 보상하라."

지난 2일 서울고등법원 민사 6부(부장판사 송진현)는 조희문(44·상명대)교수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를 상대로 낸 '부위원장 불신임 결의 무효확인 소송' 항소심에서 1심에서와 마찬가지로 원고(조교수)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영진위)가 주장하듯이 원고가 임무를 게을리해 업무파행을 가져왔다고 볼 만한 근거가 없기에 부위원장 불신임 결의는 무효"라고 밝혔다.

원래 조교수는 1999년 9월 영진위 전체회의(총 10명)에서 3년 임기의 부위원장에 선출됐다. 그러나 다음해 새 위원으로 위촉된 이용관(중앙대)교수 등 이른바 영화계 '개혁파' 7인이 "우리가 선출한 부위원장이 아니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며 불신임을 결의했다. 이들은 조교수가 영상물등급위원을 겸직해 업무를 게을리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그러나 내막으로는 조교수가 '보수파'여서 자신들의 개혁작업에 걸림돌이 된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자 조교수는 소송에 나섰고 지난해 7월 1심에서 '불신임 결의는 무효'라는 판결을 얻어냈다.

이번 항소심 결과에 대해 영진위는 "정식으로 판결문을 받지 않아 대법원에 항고할지는 아직 미정"이라고 밝혔다. 조교수는 "임기가 보장된 직위를 다수의 횡포로 물러나 마음이 아팠는데 법이 바로 잡아줘 다행"이라고 말했다. 영진위가 항고를 포기하거나,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히지 않는 한 영진위는 그동안 밀린 임금(약 1억1천만원)을 조교수에게 지급해야한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이번 사건은 아무리 뜻이 좋고 개혁의지가 높아도 법이 정한 규칙을 무시하면 원했던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일깨운다. 숫자가 많다거나, 내 뜻이 올바르다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일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아무리 '주먹이 울어도' 함부로 손을 놀릴 수 없는 건 '법'이라는 거대한 인격체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이영기 기자

ley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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