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의 장대같은 키 유전병 때문이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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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21세기는 유전자의 세기다. O.J 심슨 사건에서 혈흔의 DNA 분석, 복제양 돌리의 탄생이 가져온 체세포 복제 시대, 인간 유전자의 염기서열 30억쌍을 모두 분석한 지놈 프로젝트는 모두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뉴스였다. 뿐만 아니라 노화 방지와 암치료, 조울증과 알츠하이머병의 원인규명은 모두 유전자가 열쇠다.

무엇보다 유전학의 발달은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한 중요한 의제를 제기하고 있다. 국가는 개인에게 의무적으로 유전자 검사를 받도록 강요할 권리가 있는가? 환자의 유전자에서 심각한 결함을 발견한 의사는 당사자가 반대하는데도 그 친척에게 "당신도 걱정스럽다"고 경고해야 하는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유전 연구는 어디까지 제한해야 하는가? 법원은 범인이 폭력적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교도소가 아니라 병원에 수용하라는 판결을 내려야 하는가?

현대의 교양인이 유전학의 성과와 그것이 갖는 의미를 알아야 하는 이유다.

『천재의 유전자, 광인의 유전자』는 그런 목적에 딱 맞는 교양서라고 할 수 있다. 읽는 재미와 충실한 내용, 적절한 문제의식이라는 세마리의 토끼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역사·법률·행동·동식물·질병·윤리적 문제 등 유전학과 관련된 6개의 주제를 모두 24개의 이야기를 통해 해설하고 있다. 이야기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풀어나간다. 그 속에는 유전학 연구의 과정과 그 응용분야가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또한 유전학의 발전에서 파생되는 사회·윤리적 의문을 실무자의 입장에서 검토하고 있다.

첫머리에선 에이브러햄 링컨의 키가 그렇게 컸던 것은 유전병인 마르팡 증후군 때문이라는 추정이 소개된다. 이 병에 걸린 한 소년이 링컨 고조부의 8대손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링컨의 유전병 확률을 50%로 보고 있다. 이어 천재 화가 로트렉의 희귀 유전병, 빅토리아 여왕이 유전시킨 유럽 왕가의 혈우병 이야기가 전개된다.

다음은 유전자와 형사 법정의 문제가 나온다. 1994년 미국에서 살인범에 대해 "유전적으로 타고난 범죄이므로 무죄"라는 주장이 최초로 제기됐다. 피고측 변호사는 모노아민 산화효소라는 뇌의 화학물질을 만드는 유전자의 이상이 난폭한 범죄를 유도한다는 최신 연구결과를 제출했다. 판결은 사형이었지만 피고측이 유전자 결함을 입증할 수 있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냉동배아는 까다로운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89년에 제기된 데이비스-데이비스 이혼 소송 사건을 보자. 아내는 냉동배아를 자신이 나중에 임신하는 데 쓰겠다는 것이고 남편은 이혼 후에 자기 애가 생기도록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대법원의 결론은 "한쪽이 배아를 사용하지 않고도 아이를 가질 가능성이 있다면 배아 사용에 반대하는 다른 쪽이 이기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 책과 같은 종합적 서술은 저자가 유전공학자·의사·법률가를 겸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하버드 의과대학 외래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터프츠 의대 조교수·인터류킨 제네틱스의 CEO·미국 법률 의학 윤리를 위한 협회 회장 등을 맡고 있는 저명인사다.

조현욱 기자

poemlo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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