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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 소송대리권 전문성 인정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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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005년 1월 1일로 다가오는 국내 법률 서비스 시장 개방에 대비해 지금부터 국가와 사회, 납세자·세무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해 11월 9∼13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4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각료 선언문이 최종 합의돼 농업·서비스 등을 포함한 뉴라운드가 출범했다. 이에 따라 우리 나라의 법률 서비스 시장 개방 시기가 임박했다.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법률 서비스 시장을 개방하게 된다면 큰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 조세법·세무회계 등 각 분야의 전문 지식을 가진 1백50만여명의 미국 변호사(한국계 변호사 포함)와 유럽연합(EU)의 변호사가 물밀듯이 몰려와 국내 시장을 잠식하게 될 것이다.

프랑스가 70년대에 법률 서비스 시장을 충분한 대비책도 없이 개방해 미국 변호사들에게 자국의 시장을 송두리째 넘겨준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현대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법률적 분쟁은 다양성·국제성·전문성 등을 내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 분야는 점차 고유 영역(조세·특허·노무 등)을 확보해감으로써 일반 법률 전문가도 영역별로 세분화하는 추세다.

일반 법률 지식을 가진 변호사만으로는 사회 각 전문 분야의 법률적 분쟁을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히 조세법은 방대하고 복잡하며 납세자의 형태 또한 다양하므로 조세법에 대한 전문성이 없으면 조세 분쟁 소송에 조력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현행 민사소송법 제87조와 변호사법 제109조는 원칙적으로 변호사만이 소송대리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일반적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는 국제경쟁력이 낮아져 각 분야의 전문 지식을 가진 외국 변호사에게 조세 소송 등 업무를 잠식당할 우려가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도 전문 자격사의 소송 대리권 부여에 대한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세무사에게 조세 소송 대리권을 줘야 하는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 세무사는 조세법에 관한 최고의 전문 자격사이기 때문이다. 둘째, 세무사는 행정심에서 사법심까지 일관성 있게 소송을 대리할 수 있다. 셋째, 납세자의 선택권이 확대되므로 양질의 전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넷째, 저렴한 비용으로 소액 사건에 대한 납세자의 소송이 용이하다. 다섯째, 독일·미국·일본·오스트리아 등 선진국에서는 세무사 등의 전문 자격사에게 조세 소송 대리권을 인정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하는 현행 제도도 폐지해야 한다.

자동 자격제도를 그대로 존치한 채 법률·회계 시장이 개방되면 미국과 EU의 변호사는 물론 많은 공인회계사에게 그들이 원하면 세무사 자격을 시험 없이 덤으로 줘야 할 것이다.

석사·교수·행정고등고시 합격자의 자동 자격이 이미 폐지됐고, 2001년 1월 1일부터는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국세 행정에 종사했던 사람에 대해서도 자동 자격이 폐지됐다. 이런 상황에서 공인회계사나 변호사에게 종전과 같이 자격을 부여해야 할 이유나 필요성은 없다 하겠다.

한국세무사회는 국민을 상대로 세무사의 조세 소송 대리권 확보와 세무사 자동 자격 부여 제도의 폐지를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여 현재 서명 실적이 1백70만명을 돌파했다.

이같은 국민의 여론을 감안해 세무사에게 조세 소송 대리권을 부여하고, 세무사 시험을 거치지 않은 변호사와 공인회계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덤으로 주는 현행 제도가 개선되는 방향으로 관련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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