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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함 지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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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97년 8월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파리에서 사망하자 각종 음모설이 꼬리를 물었다. 이 가운데 최근 대두된 것이 다이애나의 지뢰 금지 운동 관련설이다. 다이애나가 반인권 국가에 무기를 수출하려던 영국을 비난하려 하자 정부가 나섰다는 것이다. 당초 적당히 위협만 주려 했으나 그만 사고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선뜻 믿기 어려운데, 영국의 변호사 마이클 맨스필드가 올해 초 데일리메일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는 다이애나와 함께 숨진 도디 알 파예드의 부친 모하메드의 의뢰로 사고 경위를 조사해 왔다고 한다.

실제로 다이애나는 생전에 지뢰 금지 운동을 활발히 벌였다. 앙골라에서 지뢰로 신체를 잃은 아이를 만나고서다. 앙골라는 오랜 내전으로 엄청난 양의 지뢰가 뿌려져 있는데, 피해자는 대부분 어린이다. 영국의 해리 왕자도 다이애나의 뜻을 기려 올해 초 모잠비크에서 지뢰 제거단체 ‘할로 트러스트’와 함께 지뢰 해체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2008년에는 앙골라에서 제1회 ‘미스 지뢰 선발 대회’가 열렸는데, 지뢰로 팔·다리를 잃은 여성들이 출전했다. 주최 측은 “지뢰로 다친 여성의 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에서 매년 수백 명에 이르는 지뢰 희생자들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뢰밭’은 베트남이다. 정부는 국토의 20%에 지뢰와 불발탄이 80만t 이상 깔려 있어 매년 2만ha씩 처리해도 440년이 걸린다고 주장한다. 종전이 된 1975년 이후 2008년까지 지뢰로 인한 사망자가 10만4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위험지대다. 국제 민간단체 ‘지뢰 금지 국제운동’은 휴전선 일대에 설치됐거나 비축 중인 대인 지뢰가 310만 개에 이른다고 최근 보고서에서 밝혔다. 한국군이 발목지뢰(M14) 96만 개를 비롯해 약 200만 개의 대인지뢰를, 주한미군은 110만 개의 대인지뢰를 한국과 미국 본토에 보유 중이라는 것이다. 다만 한국은 2004년 이후 대인지뢰를 생산·수입하지 않는다고 했다. 북한의 보유 규모는 파악되지 않으나 앙골라·수단 등지에 수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뢰생산국은 미국·러시아·중국·북한 등 13개국으로 전형적인 파편식과 탄환식 외에 ‘네이팜 화염지뢰’와 ‘핵(核)지뢰’까지 생산하고 있다.

최근 홍수로 북한에서 ‘목함 지뢰’가 떠내려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피서철 조심할 일이다. 60년 된 전쟁의 상흔(傷痕)이 아직도 쓰리다.

 박종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