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스마트폰, 아이패드도 디지털만화 무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77호 20면

"몇 년 전만 해도 만화계에서는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침식해 간다고들 생각했죠. 저도 그랬는데, 가만 보니까 그게 아니라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땅덩어리가 생긴 거예요. 어서 가서 그 위를 날지 않으면 나만 손해겠다 싶었어요. 또 종이 책에 비해 인터넷 만화가 보기 불편하다고도 했었죠. 예컨대 종이 책은 화장실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인터넷 만화는 컴퓨터 앞에서만 봐야 하니까. 지금은 의미가 없는 말이에요. 하루 중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어마어마하잖아요. 독자 입장에서는 너무 편리하죠. 잡지 발간일에 맞춰 서점에 가지 않아도 컴퓨터 앞에서 클릭 몇 번이면 새 연재를 볼 수 있으니까요.”

영화로 만들어진 웹툰 '이끼' 작가 윤태호

흥행 중인 영화 ‘이끼’의 원작자인 만화가 윤태호(41·사진)씨의 말이다. 웹툰 ‘이끼’로 처음 그를 알게 된 독자도 적지 않지만, 사실 그의 만화이력은 20년 가까이 된다. 허영만 화백의 문하생을 거쳐 1990년대 초 데뷔, '연씨별곡''발칙한 인생''로망스'등 꾸준한 화제작으로 명성을 쌓아왔다. 대표작으로 꼽혀온 '야후'는 SF적 상상력과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사건을 결합한 강렬한 이야기로, 90년대 말 문화관광부의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받았다. 이처럼 잡지 연재 등 종이매체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그에게 인터넷으로 무대를 옮기는 일은 또 다른 노력을 필요로 했다.

한 페이지를 기준으로 칸을 나눠 이야기를 펼치는 기존의 종이만화 형식을 고스란히 옮기는 대신 인터넷 만화가 그동안 개발해온 독특한 문법에 적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가장 어려웠던 점이라면 리듬감을 잡는 거였죠. 인터넷에서는 페이지를 넘기는 게 아니라 스크롤하면서 만화를 보잖아요. 사람마다 자기만의 스크롤 속도가 있는데, 처음에 콘티를 짜면서 이게 (독자들의 스크롤 속도에) 재미가 있을지를 많이 생각했죠. 제가 그동안 인터넷으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봤으면 간접훈련이 됐을텐데, 아니었거든요. 한 회, 두 회 제 만화를 저도 스크롤로 보면서 리듬감을 익혔죠. 여기 한 컷 정도가 더 들어가면 좋겠구나, 대사는 이렇게 더 나누는 게 좋겠구나 하는 식으로요. 그래도 저야 남들이 닦아놓은 길을 가는 셈이니까 쉬운 편이었죠. 강풀이나 강도하 같은 친구들이 도움말을 많이 줬어요.”

무대는 달라졌어도 그의 이야기 솜씨와 표현력은 이내 위력을 발휘했다. 2008년 8월 인터넷포털 다음에 연재를 시작한 ‘이끼’는 한 달 만에 10여 개 영화사가 판권계약 경쟁을 벌여 일찌감치 영화화가 결정됐다. 10개월간 총 80회가 연재되는 동안 독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는 특히 만화잡지 연재 시절에 비해 한결 폭넓은 반응을 경험했다. “중장년들한테도 팬레터를 많이 받았어요. 소녀시절 이후 처음 만화를 본다는 주부도 있었고요.” 그는 “인터넷은 예전의 잡지에 비해 한결 다양한 소재가 가능한 것이 장점”이라고도 했다. “잡지는 독자층에 따라 단행본으로 팔릴 만한 장르로 소재가 제한되죠. 예컨대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노년층의 사랑을 다룬 웹툰)처럼 성인 독자층이 즐거움을 느낄 만한 작품은 (청소년층 위주인) 기존의 잡지라면 연재가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인터넷 만화의 원고료는 이전에 전성기를 누렸던 만화잡지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만화잡지가 높은 원고료를 줄 수 있었던 건 나중에 단행본으로 펴내는 걸 감안해서였는데 이제는 (출판만화시장이 위축되면서) 단행본이 그걸 채워줄 수가 없죠. 만화잡지 종수도 크게 줄었고요.” 하지만 그는 “영화로 만드는 것과 같은 2차 저작권까지 합하면 지금처럼 전체 시장 규모가 컸던 적은 없다”고 했다. “문제는 (시장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인력이 있다는 거죠. 전국에 만화 관련 학과가 90개 이상인데, 각각에서 실력 있는 친구들이 매년 두 명씩만 나와도 다 어디서 일을 하겠어요. 포털도 한계가 있고.” 지난해 그는 강풀·양영순·박철권 등 동료 만화가들과 ‘누룩미디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기성 작가·작품의 매니지먼트에 더해 신인을 발굴, 연재할 무대를 찾아주고 고료를 섭외하는 등의 일을 겨냥하고 있다.

뒤늦게 웹툰에 가세한 그는 또 다른 미래의 만화에 대한 생각도 들려줬다. “다른 만화가들 만나면 자주 하는 얘긴데, 저는 웹툰이라기보다 모바일까지 합해 디지털 만화라는 개념으로 가는 편이 좋다고 봐요. 웹브라우저로 보는 인터넷 만화, 스크롤 만화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아이패드 같은 게 대중화되면 거기서 즐길 수 있는 콘텐트를 찾을 텐데 아이패드 화면에서는 기존 인쇄 만화의 형식을 고스란히 살리는 것도 가능해요. 스마트폰도 있고요."그는 자신의 아이폰에 내려 받은 미국 만화 한 편을 보여줬다. 손바닥만 한 아이폰 화면 전체를 만화의 한 칸으로 활용하면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점에서 우리네 웹툰과는 또 다른 형식이다. “여기에 하이퍼링크나 다른 진일보한 형식을 가미할 수 있겠죠. 예를 들어 ‘이끼’의 연재를 보다가 (다른 회에 전개된) 천용덕 이장의 과거사를 클릭해서 들어가는 식으로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