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책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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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호 29면

기업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지구촌 경제·경영학계의 끊임없는 논쟁거리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1970년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서 “기업의 본분은 사업이다(The business of business is business)”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는 “기업이 할 일은 이윤을 극대화함으로써 주주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라면 ‘게임의 룰’을 지키는 것, 다시 말해 불법이나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논리다. 기업에 자꾸 그 이상의 사회공헌 활동을 요구하면 이윤이 훼손될 수밖에 없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지적이었다. 그의 생각은 주주(shareholder) 자본주의 이론의 토대가 됐다.

김광기의 시장 헤집기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반론을 폈다. 그는 74년에 쓴 글에서 “기업은 한 사회와 경제가 만드는 것이며, 그 사회가 유용하고 생산적인 일을 한다고 인정할 때만 존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람이 ‘사회적 동물’인 것처럼 기업 또한 ‘사회적 존재’로서 제 역할을 해야 생존할 수 있다고 봤다. 기업이 이윤에만 매몰돼 사회 공동의 선(善)을 외면하면 결국 공동체로부터 퇴출당할 것이란 얘기였다. 그 이론에 따르면 기업은 주주뿐만 아니라 종업원·납품업자·소비자·지역사회 등 광범한 이해관계자(stakeholder)를 주인으로 모시는 경영을 해야 한다. 그래야 오래 존립할 수 있고 더 큰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평행선을 그리다 잠복한 듯했던 CSR 공방은 90년대 이후 기업들의 글로벌 경영이 확산되면서 다시 부상했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핵심 역량으로 CSR에 주목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싸게 공급하며 승승장구해도 아동노동을 착취하거나 환경을 파괴하는 ‘나쁜 기업’으로 낙인 찍히면 하루아침에 쓰러질 수 있다. 지구촌 구석구석의 소비자들은 그 제품을 생산한 기업에 대해 잘 모른다. 국경 안에서 통하던 애국심이나 관용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다.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확실하게 통하는 것은 ‘착한 게 좋다’는 인류 보편의 가치다. 글로벌 기업들은 ‘공동체의 착한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각종 사회공헌 사업에 발벗고 나선다. CSR활동은 이제 미래를 위한 투자의 일환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CSR이 미흡하다며 연일 대기업을 때리고 있다. 전경련을 필두로 기업들은 할 만큼 하고 있다며 억울해한다. CSR은 한국에서도 대세적 흐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정치적 의도를 갖고 몰아붙인다고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CSR은 사회적 약자에게 뭔가 베푸는 자선활동과는 성격이 다르다. 시장을 확대하고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전략적 경영활동의 하나로 봐야 한다. 우리 기업들도 글로벌 강자로 쑥쑥 크면서 CSR의 중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다만 아직 초보 단계이다 보니 일이 서툰 것은 아닐까. 시간을 갖고 기다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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