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명건 세종대 이사장] "은하계 그리기에 푹 빠졌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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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내 속의 또 다른 나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기회가 주어진다면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주명건(朱明建·55)세종대 이사장은 한국경제사학회장을 지낸 정통 경제학자다. 『글로벌 경제와 뉴아시아』 『경제학 원론』 등 15권의 저서는 경제학자로서의 위치를 가늠케 한다. 최근에는 강단에서보다 대학 경영 일선에서 더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다른 대학들이 움츠려 있을 때 이공계 교수 2백여명을 뽑았고 새 학기에도 70명의 이공계 교수를 뽑는 등 공격적 경영을 구사하고 있다.

이런 그가 지난해 11월 이후 중앙미술대전· 대한민국 미술대전 등 미전에 여섯 차례 출품해 특선·입선 3회씩을 기록했다. 그러니까 '경제학자 주명건'이 화가가 된 것이다.

언뜻 보기엔 깔끔하고 반듯한 이미지가 강한 그에게 덥수룩한 수염과 헝클어진 머리가 어울릴 것 같은 화가란 호칭은 어딘가 낯설어 보인다. 하지만 그의 지인들은 "그 사람 이제야 제 일을 찾았다"고 말한다. 그 역시 "다시 태어나면 경제학자보다는 화가가 되겠다"고 서슴없이 말할 만큼 그만의 미술 작업에 푹 빠져 있다.

그는 1천3백도의 가마에서 구운 세라믹 입자를 점묘법으로 형상화해 우주의 생성을 표현한다. 천체 사진에서 본 은하수의 세계를 화폭에 그대로 옮겨놓는다.

이 작업에 매료되기 시작한 것이 1996년. 평소 취미로 즐겨오던 그림 그리기와 천문학에 대한 관심, 그리고 삶에 대한 깨달음이 접점을 찾으면서다.

천문학과 미술은 그의 평생 취미다. 6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재학 시절부터 천체 사진을 모으기 시작했고 UCLA 여름 천문학 학교도 다녔다. 8인치 반사 망원경 등 천체망원경으로 하늘을 살펴보곤 하던 그는 85년 세종대에 천문학과를 만들었다. 붓 또한 어려서부터 놓지 않았다. 집 창고에는 그가 그린 풍경화· 유화 작품이 가득할 정도다. 그림에 애착을 가진 데는 세종대 설립자로 일흔이 넘어 미술 공부를 하러 미국에 간 어머니 최옥자(83)씨의 영향도 컸다.

"96년께 망원경 성능이 좋아져 인터넷에 선명한 천체 사진이 뜨기 시작하더라구요. 떡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이걸 두고만 볼 수가 없어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졌어요. 그 때부터 성운 그리기를 시작한 거죠."

그가 성운 그리기 작업에 몰두하게 된 것은 생에 대한 뼈저린 깨달음이 보태졌기에 가능했다.

"우리 눈에 지금 비치는 별 가운데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버린 것도 있습니다. 별빛이 여러 광년을 거쳐 지구까지 오는 동안 그 별은 소멸해버린 것이지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그걸 지금의 모습이라고 믿죠. 전 사람이 가진 인식의 한계를 그때 절실히 느꼈어요. 제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그 진리를 깨닫게 하고 싶습니다."

가로 7~8m가 넘는 작품의 경우 세라믹 입자 수만개가 들어간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3∼4개월 걸리는 것은 예사다. 그래서 틈만 나면 집 근처에 마련된 작업실로 달려간다. 주말엔 하루 종일, 평일엔 아침 저녁으로 세라믹 조각들과 씨름한다. 지난달 24∼29일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지난 겨울 이 전시회를 준비하느라 쓰러진 적도 있다.

"철들고 나서 처음 주사를 맞았습니다. 건강한 편이어서 주사도 안맞고 약도 안먹는데…."

이제까지 자신의 재단인 세종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해왔는데 세번째인 이번 개인전은 도심 미술관의 초대로 열었다. 여러 차례의 수상과 더불어 온전한 화가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제 본업은 봉사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대신 세라믹 작업은 제 즐거움이죠. 앞으로 더 본격적으로 해 볼 생각입니다. 학자로서의 길은 할 만큼 했고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나이가 들면서 점차 오묘한 우주 세계로 빠져들고 있나 봅니다. 허-허."

신용호 기자 nov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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