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금감위·산업은행 왜 이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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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의 대북 지원설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하루 한건식 폭로의 수위를 높여 가고 있고, 여당은 냉전주의적 대선 공작이라며 맞받아치고 있다. 국민이 갈피를 잡기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이러다간 정작 실체 파헤치기는 매몰되고 대선 내내 정쟁으로 시끄럽다가 국력만 소진되는 게 아닌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북 지원설이 유야무야로 묻힌다면 남북 관계는 도덕성에 치명타를 면치 못하고 뒷거래 의혹만 남긴 채 향후 관계 진전에도 큰 장애를 맞을 것이다.

이 의혹은 감사원·금융감독위원회가 나서 사실 확인만 하면 쉽게 풀릴 일이다.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정부의 태도다. 감사원과 금감위·산업은행 등 진실을 밝혀야 할 당국들이 하나같이 팔짱만 끼고 있다. 첫째 의혹은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장도 4천9백억원의 거액 대출 사실을 몰랐고 그 거액의 대출금을 산은 이사가 어떻게 전결로 처리했느냐는 점이다. 대출 당시 반기(半期) 보고서에서 드러나듯 극심한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던 현대상선이 긴급 대출을 받고도 찾아 쓰지 않았고 오히려 1천억원을 계열사에 지원했다는 점도 믿기 어렵다. 청와대 대책회의에 대해 말이 엇갈리는 점도 규명돼야 한다. 여기에 한나라당은 현대상선이 산은의 지점 세곳에서 4천억원을 나눠 인출해 국정원에 넘겨 주었다고 추가로 주장했다.

한날 한시에 거액의 뭉칫돈이 한곳으로 흘러들어갔다면 사실 규명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정부가 정말 떳떳하다면 버선목 뒤집기만큼 쉬운 일이다. 금감원이나 감사원 감사로 쉽게 밝혀질 일이다. 현대상선과 관계사 회계감리를 통해 자금 흐름을 추적하면 된다. 그것도 안되면 국정조사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계좌추적은 불가하다" "민간기업에 대한 조사 권한이 없다"고 뭉그적거리며 피해갈 단계를 이미 넘었다. 중요한 것은 실체를 파헤치려는 의지다. 그 의지만이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와 화해·협력을 정쟁의 와중에서 구해내는 길이다.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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