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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호적 대체 신분등록제 방안] 이혼·입양은 본인 것만 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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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법원이 10일 내놓은 신분등록제도는 1인1적(一人一籍) 형태의 신분등록부에 목적별 공부(公簿)증명 방식을 합친 혼합형이다. 지금까지 호주를 중심으로 짜인 가족관계가 개인별로 독립된다는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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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등록등본은 호적과 마찬가지로 구청.동사무소 등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 취직.입학하거나 여권 발급 등을 위해 신분등록부를 내야 할 경우 가족증명.혼인증명 등 목적에 맞게 증명서를 제출하면 된다. 호적등본의 경우 형제자매 등 제3자도 발급받을 수 있으나 신분등록부는 본인이나 국가기관이 아니면 열람할 수 없게 된다. 가족이나 제3자가 원할 경우 청구 사유 등을 제시하면 가족관계나 혼인관계 등 필요한 것만 제한적으로 볼 수 있다.

◆ 신분제도 도입의 필요=호주제가 폐지되면 어떤 사람이 누구와 함께 어디에 사는지를 나타내는 주민등록만이 남게 된다. 주민등록등본은 세대주를 기준으로 한 집에 동거하는 사람의 정보만 담겨 있어 친족 간 관계를 알 수 없다. 재산상속 등과 관련된 분쟁이 발생할 경우 가족관계 등을 입증할 수 없어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현재의 호적제도를 대신할 새로운 형태의 신분등록제도가 필요한 이유다.

◆ 독립적인 신분등록부=국민 누구나 별도의 신분등록부를 갖게 되는 것이 호적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출생에서 혼인.사망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분 변동사항이 개인별로 기록된다.

여성도 자신의 신분등록부를 갖게 돼 아버지나 남편.아들의 호적에 들어갈 필요가 없어졌다.

등록부에는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와 부모.자녀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생년월일 등 가족에 관한 정보도 들어 있다. 그러나 가족의 출생.결혼.이혼.입양 등 현재 호적에 있는 신분변동 사항은 없어진다.

새 제도는 남성 우월주의의 상징인 호주를 없애자는 여성계의 주장을 수용하면서도 최소한의 가족관계는 유지해야 한다는 국민정서를 반영한 절충안이다. 그러나 호적에 포함됐던 분가하기 이전의 형제자매는 신분등록부에서 제외돼 가족주의를 해체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 외국의 신분등록=독일.프랑스 등 서유럽의 신분등록제도는 출생부.혼인부.사망부와 가족부 등으로 나뉘어 있다. 미국과 영국은 철저하게 출생부.혼인부.사망부 등 목적별로만 기록한다. 개별 기록은 본인 사항만 기록한다. 가족을 파악하기 어려워 유산상속 시 자녀인지를 확인하려면 개인의 출생증명서를 확인해야 한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법 개정을 통해 호주제를 완전 폐지하고 부부와 미혼 자녀를 기본으로 하는 신분등록제를 갖고 있다. 결혼하면 부부는 하나의 성(姓)을 쓰고, 신분등록은 부모와 같은 성을 쓰는 자녀로 제한한다.

◆ 대법원.법무부 신경전=새로운 신분등록제도를 놓고 대법원과 법무부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정부 부처가 법안을 만들어 제출하면 국회가 심의 과정에서 해당 부처에 의견을 조회하는 게 관행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국회가 법무부와 대법원의 의견을 함께 청취하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여성계와의 조율을 거쳐 안을 확정했으며 호적 업무의 주무 기관이 법원이어서 대법원 안이 국회에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맞서 법무부는 "대법원은 입법기능이 없으며 행정자치부.여성부 등 관련 부처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정부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종문 기자

***호주·호적이란

호주(戶主)는 한 호적에 등재돼 있는 가족을 통솔하거나 지배하는 사람으로 '가(家)를 이어가는 사람'을 의미한다. 현행 민법 778조는 '일가의 계통을 승계한 자, 분가한 자, 또는 기타 사유로 가를 창립하거나 부흥한 자는 호주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1989년 민법 개정으로 가부장적인 권한이 대폭 줄어 현재는 가족의 대표자라는 상징적인 존재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여성계는 호주의 승계원칙이 피승계자의 직계비속 남자(아들)가 1순위여서 남녀평등에 위배된다고 지적해 왔다. 호적(戶籍)은 호주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신분사항을 기록한 문서다.

우리나라에 근대적 의미의 호적이 생겨난 것은 갑오개혁(1894년)이후인 1896년 9월 호구조사 규칙이 제정되면서다. 1962년 민법 개정으로 주거관계 등은 주민등록제로 넘어갔다. 현재 호적 사무의 관장은 시.읍.면장(특별시와 광역시 등은 구청장)이 맡으며 소재지 관할 가정법원장의 감독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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