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 릴레이 인터뷰] 권 영 길:"노동자들 기업 소유·경영 참여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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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후보는 분명한 노선과 정책을 제시했다. 준비한 답변 자료와는 별도로 중요한 내용을 메모해 가며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權후보의 답변에서는 '나'보다 '우리'라는 표현이 훨씬 자주 등장했다. 당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는 후보라는 인상을 주었다. 權후보는 그러면서도 운동가에서 벗어나 득표를 중시하는 현실 정치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는 "기업 순이익의 일정 비율을 근로자들에게 배분하는 '연대 임금제'는 공약으로 내걸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미군 철수나 핵발전소 폐쇄 문제도 현실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접근하겠다"고 했다. 인터뷰는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27일 오전 10시15분부터 2시간20분간 이뤄졌다.

◇정치 분야

-당선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데 왜 또 출마하려 합니까.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민노당의 목표는 국가 권력의 쟁취입니다. 그를 위해선 확고한 청사진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진보 정당의 후보가 우연히 당선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입니다. 50년 보수 정치를 바꾸기 위해 벽돌 한장씩을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봐 주십시오."

-자녀들이 미국과 프랑스에 유학 중입니다. 또 재산이 4억원대여서 민노당 후보로서는 의외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1994년 해고된 뒤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아 생활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집을 합치면서 전세금을 받아 일부 쓰고 있습니다. 장녀는 운동권 출신인데 장학금을 받아 유학 갔습니다. 아들은 월급·퇴직금을 모아 유학을 갔고, 며느리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언론사에 있을 때 파리 특파원으로 가면서 집을 팔아 그 일부로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 근처 그린벨트 안에 있는 땅 5백평을 샀습니다. 매매가 거의 되지 않는 곳입니다. 그 땅이 세월이 지나면서 값이 올라 3억원이라고 합니다. 빛 좋은 개살구인 셈입니다."

盧후보와 지지기반 달라

-대선 후보 중 가장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민노당은 이념에 바탕을 둔 정당이 아닙니다.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에서 버릴 부분은 버리고 택할 부분은 택해 정책으로 말하는 정당이 되려고 합니다. 다만 제가 진보주의자이고 민노당이 진보 정당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진보의 기준은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느냐입니다."

-노무현 후보도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을 얘기해 지지 기반이 겹치는 것 같습니다.

"노무현의 길과 권영길의 길은 완전히 다릅니다. 盧후보는 김대중 대통령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계승한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권영길은 반대합니다. 盧후보는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서민의' 정당이라고 얘기합니다. 질적으로 다릅니다. 1천3백만 봉급 생활자, 4백만 농민, 4백만 영세 상인의 정당입니다."

-일부 진보 진영에선 權후보의 출마가 보수 진영 후보의 당선을 도와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비판하는데요.

"(목소리를 높이며)그건 그쪽이 책임질 일입니다. 또, 우리를 찍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냥 두면 투표를 안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람직한 정치 체제나 구도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정치뿐 아니라 사회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은 진보 대 보수 구도가 구축되는 것입니다. 정치 개혁이 중요한데 그 요체는 돈 안드는 선거와 정당 민주화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이미 민노당이 합리적인 보수 정당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다른 나라도 진보 정당의 역량이 강화돼 집권 가능성까지 보여주자 제대로 틀을 갖추지 못했던 보수 정당이 개혁해 진보-보수 구도가 된 것입니다."

◇통일·외교 분야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단계적 철수를 말하는 겁니다. 시점은 병력 감축이 시작되는 남북 간 군축 이행 시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도 미군 철수를 논의해야 합니다. 이미 91년 한·미 간에 미군 철수와 용산기지 이전 논의가 있었습니다."

-반미(反美)노선을 갖고 있습니까.

"미국의 현 대통령이 취하는 정책, 대 한반도 정책, 경제정책을 포함한 세계 패권화 정책에 반대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 정책을 취하는 나라가 미국 아닌가요.

"그게 그렇게 되나요."

-정부의 대북 비밀 지원설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입장은 뭡니까.

"대북 경제 지원을 현대 등 재벌을 내세워 시행한 것은 처음부터 문제를 안고 있는 정책이었습니다. 공적 기관을 통해 차근차근 지원해야 했습니다. 국민 몰래 지원했다면 비판받아야 합니다. 그런 문제는 국민의 동의를 얻어서 해야지요.

◇경제 분야

-기업하는 사람들이 가장 꺼리는 후보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민주노총 위원장 때 경제대책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과 함께 한국 기업이 어떻게 해야 살아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했습니다. 실상을 알고 나면 중소기업으로부터는 가장 환영받을 사람입니다. 다만 재벌급 대기업과는 아무래도 불편한 관계가 될 것입니다. 저는 재벌 규제가 더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공무원 노조 행동권 줘야

-재벌 정책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있습니까.

"민노당은 기업의 해체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재벌 해체를 내걸어 왔던 것은 황제식 경영 시스템이나 외환위기를 불러온 무한정한 상호 출자, 문어발식 경영, 전문성을 살리지 못하는 경영 체제 때문입니다. 핵심은 기업들이 전문성을 살려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민노당은 노동자들의 소유·경영 참가를 가장 중요하게 내세우고 있습니다."

-공무원 노조를 인정하고 단체행동권을 부여해야 할까요.

"공무원 노조는 바로 합법화되고 노동3권도 보장돼야 합니다. 다만 시행령 등에 단서 조항을 넣는 것은 고려 대상이 될 수 있겠지요."

◇사회 분야

-무상 의료 실현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현재 의약분업이나 건강보험 통합만으로도 엄청난 논란이 있는데 현실성이 있겠습니까.

"우리 공약의 핵심이지만 집권 첫 단계부터 하자는 건 아닙니다. 현재 의보 체계에서 제외되는 부분을 일차적으로 흡수하자는 겁니다. 본인이 부담해야 할 부분을 국가 재정으로 부담하면서 보험료도 점차 무상으로 갈 수 있다고 봅니다. 현 정부에서 국·공립대 병원을 사실상 민영화하고 지방의료원을 위탁병원, 또는 민간병원으로 만들었는데 국·공립병원은 서민·노인층을 수용하는 병원으로 강화해야 합니다."

-교육 정책은.

"정운찬 서울대 총장의 구상을 확대해 모든 국·공립대에 지역할당제를 도입하려 합니다."

-고교 평준화에 대해서는 찬성합니까.

"현재 60% 정도인 평준화율을 확대해야 합니다. 과학고는 이공 분야 전공 특수학교로, 외국어고는 외국어를 연마하는 특수학교로 고려할 수 있지만 입시학원이 돼서는 존재 이유가 없습니다."

-집권했을 경우 노조의 불법 파업에 어떻게 대처할 겁니까.

"원칙적으로 불법 파업이라는 규정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신고제지만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는 집시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또 필수공익 사업장이 거치도록 돼 있는 직권중재도 폐지해야 합니다. 이 문제는 국제노동기구(ILO)가 매년 한국에 권고하고 있는 사항이기도 합니다."

-원자력발전소 건설 반대나 단계적 폐쇄는 현실성이 없는 것 아닙니까.

"원전 신규 건설 중단은 바로 시행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기존 발전소는 적어도 50년 정도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스웨덴은 지금 수명이 다 된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있습니다."

◇문화 분야

-문화 분야 정책이 눈에 띄지 않아 의외인데요.

"공약을 만들어 가는 단계입니다. 문화산업과 관광산업이 연결되지 않고는 한국의 관광자원이 개발될 수 없습니다. 분단 국가라는 특성을 살리면 세계적 관광 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판문점·비무장 지대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문화 분야에 대한 국가 지원이 국가 간 통상 협상에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세계화할수록 전통적 문화가 세계화에 오히려 기여한다는 입장입니다. 세계무역기구(WTO) 양허 조항 문제는 정부에서 엄청난 실책을 저질렀다고 봅니다. 스크린 쿼터를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 스스로 그걸 무너뜨렸습니다. 지금이라도 정부 입장이 취소되기를 바라고 있고, 만약 그렇지 못할 때 스크린쿼터 때보다 더 강한 국민적 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정리=나현철 기자

tigera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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