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아이돌 판치는 가요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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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손호영(31)이 지난 8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삼성동 KT&G상상아트홀 소극장에서 12차례 공연을 했다. 지난해 충무아트홀에서 8차례 공연 이후 1년여 만이다. 손호영이 소극장 무대에 선다는 거, 그를 좋아하는 팬 말고는 뭐 특별한 일이랴. god로 7년과 2006년 솔로가 된 이후 20번이나 소극장 공연을 했으니 신선하지도 않다. 근데 인터뷰하기로 한 건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였다. 왜 손호영이냐고? 아이돌이 판치는 가요계에 30대가 된 원조 아이돌이기 때문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다. 흩어졌지만 살아남은(?) 이효리, 윤은혜, 은지원 정도의 현실에 그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햇수로는 벌써 데뷔 12년차 중견가수인 그 다. 쉰 목소리를 내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 잠시 놀랐다. “오늘 공연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물으니 “무대만 오르면 신기하게 목이 트인다”며 특유의 미소로 화답했다. 지난 22일 공연대기실에서 그를 만났다.

-소극장 공연만 20회를 했어요. 공연규모(400~500석)가 수익 면에선 효과적이지 못한 것 아닌가요.
“전혀 수익이 없죠. 1회당 백만 원 정도? 생활 유지가 어려운 것은 분명해요. 하지만, 공연을 하고 싶고 좀 더 뭔가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 때문에 제 돈을 쓰면서까지 하지요. 솔직히 밤무대 행사 하루면 20번 공연한 돈을 벌 수 있지만 그래도 공연이 좋고 팬과의 약속이니까… ”

-소극장 공연해보니 어떤가요. 자존심 상하지 않으세요?
“god시절이었다면 자존심 상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소극장은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있어요. 끝에 앉은 분 얼굴도 다 보이고, 조금만 실수를 해도 다 들키죠. 재미와 즐거움이 몇 배 커요. 그 매력은 대형공연장이 따라올 수 없어요.”

-가수로서 노래, 뮤지컬, 연기 등 이것저것 많이 한다는 건 설 자리가 없어서는 아닌가요?
“설 자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대중의 귀를 잡기가 더욱 힘들어 진 건 맞아요. 방송 3분 안에 아이돌같이 단체 퍼포먼스 꾸미는 무대를 보여주는 게 쉽지않죠. 공연에서 쌓은 내공을 3분 안에 보여주기란 쉽지 않다보니 무대에 설 기회가 줄어드는거겠죠. 그런 현실이 안타까워요.”

-그룹에서 나와 홀로서기에 성공한 경우가 극히 드문데.
“(이)효리 누나를 기준으로 보면 전 많이 못 미치죠. 지금의 저도 ‘god’때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거 잘 알아요. (김)태우랑 저도 둘 다 잘 안되면 안 되잖아요?. 비교 대상이라도 되야 악바리 근성을 갖을 수 있고요. 동방신기도 지금의 인기만 믿고 (해체 후) 잘 될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죠. 예전 동방신기처럼 그대로 하면 팬들은 외면할 겁니다. 어떤 마인드를 갖고 어떻게 준비를 하느냐가 중요해요.”

7년간 몸담았던 ‘god’의 인기와 아이돌 이미지가 손호영에겐 장애물이었다. “솔로 준비를 하면서 냉정하게 앨범을 낼 실력이 안됐다”는 그는 진정한 뮤지션으로 탈바꿈하고자 가수 겸 프로듀서 박선주를 찾아가 냉정히 판단해 달라고 했다. 노래 한 곡을 혼자 이끌어가는 끈기가 없다고 지적을 받아 그는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숨쉬기, 리듬 타기만 하루 8시간씩 연습했다고 했죠. 긴 호흡을 기르기 위해 수영장도 다녔어요. god때 그런 연습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 연습을 통해 이젠 혼자 공연할 수 있는 실력을 갈고 닦았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 자신감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아이돌 판치는 가요계에 30대 가수인 손호영이 살아남는 법은 뭔가요.
“저보다 더 어리고 예쁘고 끼가 넘치는 아이돌 많은데 제가 그 친구처럼 할 순 없죠.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실력으로 인정받는 수 밖에 없습니다. 솔로 이후 뮤지컬 ‘올슉업’ 100회, 소극장 공연을 20번 정도 혼자 힘으로 해냈어요. 이번 공연 중 5곡은 피아노도 치고, 기타 연주도 했어요. 전 원래부터 기타나 피아노 친 놈이 아니거든요. 보통 다른 콘서트를 보면 2시간 정도 하는데 제 공연은 2시간 40분~3시간 가량을 해요. 2시간 정도 하면 너무 짧다고 항의할 정도거든요. 부끄럽지 않은 공연을 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으니까요. 제 스스로 발전상에 칭찬하고 싶죠.”

-댄스 음악이 주류를 이루고 여가수들의 선정성 논란이 많은 대중 음악계를 어떻게 보시나요.
“벗고 나오는데 대중들이 어떻게 안 좋아하겠어요? 노래가 아닌 비주얼로 현실이 안타깝죠. 요즘 학생들은 그런 음악이 진짜 음악인 줄 알죠. 저도 90년대 가수지만 빌보드 하면 최고로 손 꼽았는데 지금은 빌보드가 뭔지도 몰라요. 대중가요 좋아하는 거 좋지만 왜 빌보드를 세계에서 인정하는지 들어도 보고 우리 음악과 비교도 해보고 어디가 원조인지는 알아야 기본 아니겠어요?

-데뷔 20주년, 30주년 무대를 상상해 보셨나요.
”많이 상상하죠. 그땐 많이 변하진 않고 멋있게 늙어 있을 거 같아요. (웃음) 가수뿐 아니라 연기 쪽도 욕심 많고요. 분명히 god때처럼 다시 기회를 올 겁니다. 한번 더 일어서야죠. 믿어 의심치 않아요.“

이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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