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北좌파의 좌절과 배신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우리 사회의 친북(親北)좌파들이 불쌍하게 됐다. 지난주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한 탓이다. 1987년 KAL기 폭파범 김현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던 다구치 야에코(한국명 이은혜)가 포함됐다는 실토는 그들에겐 치명적이다. 이은혜의 존재 시인은 KAL기 폭파가 북한 소행임을 확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급진 친북 좌파들은 북한의 목소리대로 KAL기 폭파가 남한 정부의 조작이라는 주장을 끈질기게 폈다. 지난해 안기부의 수지 金 살해 조작이 들통난 기회를 이용해 조작론을 다시 키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여기에 현혹된 한심한 언론 보도도 일부 있었다. 그런데 폭파 사실을 시인했으니 이들의 뒤틀리고 광적인 집착이 비참한 종말을 맞은 것이다.

운동권 출신인 민주당 Q의원(익명 요청)은 한때 조작론에 매료됐다. 지금은 달라진 그의 진단은 이렇다. "폭파 자작극론은 친북 좌파의 생명력을 과시하는 이슈였다. 김정일이 이은혜만은 감출 것으로 그들은 믿었다. 그런 기대를 팽개치고 화끈하게 시인했으니 친북좌파는 낭패와 배신감에 빠졌을 것이다."

무엇보다 친북 좌파 지식인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평양선언에서 일본의 한반도 지배에 대한 과거사 청산 부분이다. 북한이 65년 박정희정권의 한·일 국교정상화 방식을 그대로 따라갔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일 수교회담 때 거셌던 굴욕외교 논란을 끝없이 부풀려왔다. 1인당 국민소득이 고작 1백5달러였던 그 시절 경제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의 측면은 외면했다. 식민지배의 사죄 없이 돈받고 민족적 양심을 팔아먹었다는 논리를 재생산했다. 이를 해방 후 친일파 제거 논쟁과 연결지어 북한은 못살지마는 민족의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런 턱없는 논리와 역사적 상상력이 이번에 허망하게 깨진 것이다. 침략 피해의 대가인 '배상'표현을 북한도 고수하지 못하고 '경제협력'이란 용어를 썼다. 사죄의 내용은 무라야마 전 총리한테 들었던 귀에 익은 것이다. 경협 규모도 65년 일본 정부가 내놓은 5억달러를 지금 가치로 따진 수준(70억∼1백억달러)이 될 전망이다.

그동안 우리 국민 다수의 마음엔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경제에 힘을 쏟아 역사 정리를 제대로 못한 게 아니냐는 아쉬움이다. 이런 감정은 식민지배·사과만큼은 북한이 일본 외교의 교활함을 꺾어주기를 바라는 기대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같은 고뇌를 친북 좌파들은 놓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수많은 신생 독립국 중 유일하게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한 한국의 성취를 깎아내리는데 활용했다. 그런 성취에 쏟은 국민의 열정을 '자주 아닌 매판의 길'이라는 악담을 퍼붓었다. 이념 갈등은 거기서 커졌다.

김정일은 왜 고이즈미에게 패배했는가. 金위원장은 2년여 전 평양에서 남한 언론사 사장단에게 "자존심이 꺾이면서까지 일본과 수교는 절대 안한다. 일본이 부당한 해명을 요구하는데 명치유신 때부터 따져야 한다.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자신했다. 그런데 고이즈미와 회담에선 그런 자존심은 사라졌다.

국가간 대접은 인간 관계와 같다. 테러와 인권 탄압의 '불량 국가'신세에다 경제는 거덜나버린 게 북한이다. 金위원장의 아들 김정남의 불법 입국,괴선박 침입 등 일본한테 많은 약점이 잡혔다. 그런 일본에 매달리게 됐으니 金위원장의 양보는 의연한 결단이 아닌 초라한 후퇴로 비춰지는 것이다.

친북 좌파들이 매도했던 박정희식 발전 모델 이외에는 대안이 없음을 확신한 것도 양보의 이유일 것이다. 김정일은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을 높게 평가해 왔다. 이런 것들이 북·일 회담의 역사적 교훈이다. 회담 결과는 친북 좌파들이 줄기차게 상처를 내온 우리의 성취와 역사의 균형 감각을 보살피고 다듬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것이 자본주의 실험에 열중인 북한을 우리 국민 전체가 진심으로 도울 수 있는 바탕인 것이다.

bgpar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