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속에서 찾은 생명의 원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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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풍요한 물질문명 속에서 폐품은 오히려 시대의 상징이 될 수 있다. 거대한 쓰레기 더미에서 골라낸 폐자재는 폐기된 인간의 모습이자 생명력의 원천으로 보이기도 한다.

신영성(44·경희대 국제교육원 겸임교수)씨는 1980년대 '난지도'그룹 시절부터 이미 폐품을 인간의 존재와 의미로 소생시켰던 작가였다.

쓰레기 하치장의 지명이었던 '난지도'를 내건 이 소그룹의 회원들은 소외되고 버려진 사물들을 매개로 해 현대문명과 고정관념을 비판하고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되새겼다.

신씨가 25일부터 10월 7일까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미술관에서 여는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는 20여년이 흐른 시점에서도 변함없는 '난지도'그룹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개인전이다. 망치와 전기톱으로 잘리고 불과 인두로 처절하게 망가진 1백개의 선풍기가 '코리언 드림'이란 역설적 제목을 달고 벽에 늘어섰다.

얼핏 후줄근한 군상처럼 보이는 그들을 작가는 "농경·산업·정보사회로 달려가는 개발도상국의 구조, 그 시대적 경계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02-760-4607.

26일까지 서울 여의도 스페이스 이마(imA)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윤동구(50·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씨에게도 폐품은 기계문명이 짓이긴 인간사를 비춰주는 거울이자, 그를 딛고 일어설 자생의 발판으로 동시에 작용한다.

윤전기를 돌리던 공장을 개조한 공간 자체가 이미 산업사회의 폐기물을 재생한 바탕이고, 그 주변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쌓여 있는 각종 자재들이 자연스러운 배경이 되고 있다.

그 삭막한 공장터에서 날아오르려 안간힘을 쓰는 건 두 동강 난 프로펠러다. 그 잔해들에는 아픈 사연이 숨어 있다. 지난해 5월 윤씨가 작업한 대형 조형물을 올림픽대교에 설치하려다 추락한 군용 헬기와 그 조종사들을 애도하는 작품인 것이다.

애도는 승화로 나아간다. 건축 공사장처럼 녹색과 흰색 장막으로 칸막이가 된 또다른 공간에는 금속 파편들을 단 상여 같은 빛상자가 위 아래로 움직이며 비상을 꿈꾼다.

진혼곡처럼 터지는 스피커 소리에 반응하는 그 상자는 그러나 올라갔다가 결국 다시 지상으로 내려온다. 인간은 천상의 존재가 아니라 땅의, 바닥의, 흙의 존재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무덤처럼 침침한 공간 속에서 더 낭랑하게 울려퍼진다. 02-781-0886.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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