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 한국 '기러기 아빠' 가정 특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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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중앙일보 사진DB. 박종근 기자

가족을 위한 희생일까, 가족을 해체의 위험에 처하게 하는 도박일까.

자녀의 조기 해외유학을 위해 이산가족의 삶을 사는 우리네'기러기 아빠'의 모습이 미국의 주요언론에 대문짝만하게 소개됐다. 워싱턴 포스트는 9일자 1면과 14,15면 등 장장 3개면에 걸쳐 이같은 기사를 실었다.

워싱턴 포스트가 소재로 삼은 가정은 국내 모기업 간부인 김모씨네. 김씨는 강원도 태백에서, 부인 김모씨는 볼티모어 남쪽 엘리컷 시에서 세 아이와 각각 살고 있다. 기사는 양쪽을 오가며 10장의 사진을 곁들어 김씨네의 삶을 자세히 소개했다.

신문은 "기러기(kirogi,,wild geese)는 한국의 전통 결혼식에서 평생 반려의 상징이고, 먼 거리를 돌아다니며 먹이를 잡아 새끼들을 먹이는 새"라며 한국의 기러기 아빠 가정에 대해 '아이들을 미국에서 교육시키기 위해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갈라진 가정'이라고 설명했다.

신문은 한국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기러기 아빠 가정의 숫자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지만 조기 유학생수는 지난 2002년 한해만도 1만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기러기 아빠를 양산한 조기 유학 급증 원인에 대해 신문은 "한국은 인터넷과 초고층 상가 면에선 선진 국가이지만, 사회적으론 아직 왕조시대의 교육체제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나라"라며 "직업과 사회적 지위는 물론 배우자마저도 시험 성적에 따라 결정됨으로써 창조성이나 기업심이 설 자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또 "한국 사회에선 영어 구사력과 국제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미국 교육 배경이 우대받고 있다"며 "일류대 입학문이 점점 좁아짐에 따라 조기 유학이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에서 김씨네 장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자신에게 뒤져 2등을 한 친구가 집에서 야단맞고 울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렇게 압박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며 "지난 1년이 내 생애 최고의 해"라고 말했다.

파탑스코 중학교에 다니는 장녀는 유학 1년만에 외국인 학생 영어 교습반을 졸업했고, 학교 성적도 우등이며, 방과 후 학교 밴드 활동과 드럼 개인 교습, 교회 모임 등 미국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세 아이 중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은 아빠의 부재를 가장 절감하고 있다. 아들은 아빠가 보고 싶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한국 아이들하고만 사귀고 학교 독서 시간에도 한국책을 꺼내든다. "영어는 재미없다"며 영어를 잘 쓰려 하지 않는다.

하워드 카운티에서 지난 2년 간 '기러기 엄마'와 10대 아들들을 관찰한 상담원 수에 송은 남자 아이들이 아빠와 떨어져 사는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내가 상담한 남자 아이들은 낙제, 분노 폭발, 약물 등의 경험이 있고 한 가족은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상담원은 "부모들이 현실이 아니라 잘 되는 경우만 가상해 (기러기 가족) 결정을 내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인 김모씨는 아이들 장래를 생각하면 남편과 떨어져 사는 삶을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김모씨는 냉장고의 고장난 깜박이등을 스스로 고친 후 "봐요, 남편이 필요없어요"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분이 울적할 때는 남편을 생각하면서 왜 혼자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을 한다"는 게 김씨의 얘기다.

아빠 김모씨는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게 희생이라고 말했지만 신문은"이는 또한 도박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또 오피스텔 같은 데서 혼자 사는 기러기 아빠들이 패스트 푸드로 비만이 되거나, 외도, 심지어는 자살을 하기도 한다는 보도가 한국에서 곧잘 나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신문은 김모씨가 일주일의 짧은 휴가를 얻어 미국에서 부인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자세히 묘사했다. 아빠 김모씨는 자신이 남편이나 아버지가 아니라 마치 손님으로 찾아온 삼촌처럼 느껴져 불안해한다. 그런 김모씨에게는 한국에서 수시로 업무용 전화가 걸려와 저녁식사를 방해한다. 무엇보다도 부인 김모씨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남편이 CNN뉴스 따위를 체크하기 위해 수시로 인터넷서핑을 하는 점이다.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부인은 지난 몇달간 느껴온 좌절감, 즉 "그 사람은 아내가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기자에게 토로한다.

남편 김모씨는 당초 가족과 떨어져 10년을 더 일하면서 국내 모기업 최고경영자가 되는 것이 목표였지만, 더 일찍 일을 그만두거나 다른 직업을 찾아 가족과 합류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

디지털뉴스센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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