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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시아 대재앙] "첫 의료팀" 전주민이 마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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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스리랑카 동북부 트린코말리 지역의 이라칸데 이재민캠프.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과 한림대 합동의료봉사단이 8일 낮(현지시간) 트린코말리에서 차로 세 시간 넘게 비포장 도로를 달린 끝에 도착한 곳이다.

마을의 농업지도소로 사용됐다는 캠프에는 졸지에 이재민 신세가 된 800여명이 머물고 있다.

캠프 앞마당에 임시로 설치된 100여개의 천막에서는 배급받은 쌀로 밥을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식사는 주먹밥 한 덩어리가 전부였다. 반찬이라곤 보이지도 않았다. 지진해일을 피해 황급히 집을 떠나온 사람들이어서 변변한 주방기구는 하나도 없었다. 입고 있는 옷과 신발은 곳곳에 구멍이 나 있었다.

이라칸데 지역에서는 사망자 1100여명, 이재민 8만6000여명에 달하는 큰 피해를 봤지만 남부의 골이나 수도 콜롬보 인근 지역과는 달리 구호품이나 의료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콜롬보에서 차로 10시간 넘게 걸릴 뿐 아니라 중앙정부의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심 준비를 하던 이재민들은 한국 의료진이 탄 승합차가 캠프로 들어서자 수백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지진해일 참사 이후 외국의 의료봉사단이 이재민들을 찾기는 처음이었다.

이재민 나후라자 시바(42)는 "한국인 의사가 온다는 얘기를 듣고 모든 주민들이 오전부터 목을 빼고 기다렸다"며 "이제야 전염병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한국의료진은 곧바로 캠프 중앙에 천막을 쳐 임시진료소를 세웠다. 현지어로 내과.소아과 등 진료과목이 적힌 작은 책상 앞에 한국인 의사들이 들어서자 스리랑카인 자원봉사자의 안내에 따라 긴 줄이 만들어졌다.

이재민들의 손에는 상자를 찢어서 만든 노란색 종이가 쥐여져 있었다. 의료봉사단이 오기 전에 만든 대기표였다. 이재민들은 자신의 차례가 되기 무섭게 우리 의료진에게 고통을 호소했다. "가슴과 머리가 아프다" "다리에 난 상처에서 피가 멈추지 않는다" "며칠 동안 설사만 했다"는 등 그동안 참아왔던 아픔을 토해냈다.

의료진이 복통을 호소하는 한 어린이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자 자지러지게 울었다. 봉사단 의사 진두균씨는"착한 아이들이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임시진료소 옆에선 사시간건(6)이란 아이가 연방 "아빠, 내 동생 어딨어"라며 울어댔다. 그의 아버지 조겐드런은 아이를 달래지도 못하고 초점 없는 눈으로 하늘만 바라봤다. 늘 붙어다니던 사시간건의 세살짜리 동생이 지난해 12월 26일 발생한 지진해일에 휩쓸려 실종됐다고 한다.

한국의료진이 이날 진료한 환자는 250명. 식수 오염에 따른 콜레라 등 전염병은 일단 발견되지 않았다. 단장인 정두련(39) 교수는 "이재민들 모두가 지쳐있어 충분한 치료를 해줄 수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월드비전의 스리랑카 사업본부장인 아지페레라는 "현지인들도 오기 꺼리는 이곳까지 와준 한국 의료봉사단에 이재민들은 감명을 받았다"며 "아직까지 치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다른 피해지역에서도 한국 의료봉사단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해질 무렵 진료를 마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의료봉사단을 향해 100여명의 이재민들은 "코러스 티엔나나(한국 최고)" 라며 손을 흔들었다.

트린코말리(스리랑카)=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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