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도둑과 분투 아빠의 '기 살리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도둑맞곤 못살아'는 한 도둑에게 연속적으로 집을 털린 소시민 가장이 도둑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의 코미디 영화다. 도둑이 훔쳐간 건 금품만이 아니라 아빠의 자존심과 위신이다. 결말부에 준비된 아빠와 도둑의 한판 대결은 이 시대 무기력한 가장의 권위 찾기를 상징한다.

이 영화의 설정과 배역들의 면모는 충분히 개성 있다. 중산층의 화목과 여유를 자랑하는 이들의 이면에는 한가지씩 모순이 도사리고 있지만, 그 뒤틀림은 엄청난 갈등을 유발할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다. '아빠의 청춘'을 되찾기 위한 코믹한 동기 유발의 수준에 적당히 머물고 있는 것이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소심하고 착한 가장 고상태 역을 '조폭 마누라'의 심약한 남편 이미지가 아직 유효한 박상면에게 맡긴 것도 꽤 적확한 선택이었다.

영화는 개발 계획의 실패로 허허벌판에 홀로 세워진 상태의 집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상태의 '썰렁한' 내레이션으로 묘사되는 그의 집은 윤기가 흐르는 최신형 가구 등으로 가꿔진 '스위트 홈'이다. 미모의 아내(송선미)는 이 '행복이 가득한 집'에 걸맞은 만점 주부임이 분명하지만, 불행히도 미각을 잃어버린 탓에 외양은 멀쩡한데 맛은 엉망인 요리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화목한 가정을 이뤘다는 아빠의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은근히 아빠를 무시한다.

이 어딘가 어긋나 있는 일상의 틈을 도둑 강조(소지섭)가 건드린다. 성공한 게임 프로그래머지만 짜릿한 스릴을 얻고자 도둑질에 나서는 그도 어쩌면 상태네와 같은 부류일지 모른다. 그가 훔치는 것도 대단한 게 아니다. TV 리모컨과 3만원, 그리고 상태의 아내가 만들어놓은 괴상한 맛을 지닌 화려한 음식이다.

그러나 꽤 독특한 코미디 영화가 될 것 같다는 도입부의 기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진다. 군더더기가 자꾸 끼어들기 때문이다. 무술을 배우기 위해 상태가 찾은 체육관 장면이 그 중 하나. '급소'를 강조하며 신체의 특정 부위를 공격하는 손·발동작을 반복하는 것은 우스움을 지나 지루함을 느끼게 한다. 도둑과 아빠의 대결에서 만화적인 액션을 남발하거나 TV 오락 프로에서 나올 법한, 자막을 끼워넣는 연출적인 '장난'도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진짜 프로게이머 임요환이 게임에서 '97전 96패 1무'를 기록하는 형편없는 실력의 게임 회사 직원으로 깜짝 출연한다. '두사부일체'의 윤제균 감독이 머리를 2대8 가르마로 나누고 포마드 기름을 잔뜩 바른 회사원으로 등장하는 점도 재미나다. 임경수 감독의 데뷔작. 2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