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전! 창업현장] 프랜차이즈 삼겹살집 운영 김종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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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직장을 그만둔 아빠가 계속 안 들어오셨다. 어디에 가 계실까. 어제 TV에서 서울역 노숙자들이 나왔다. 혹시 아빠가 있을까봐 유심히 봤지만 다행히 아빠는 거기에 없었다. 아빠가 빨리 들어오셨으면 좋겠다."

지방을 전전하며 방황하다가 잠깐 경기도 안양의 집에 들른 김종서(52)씨는 우연히 초등학생 아들의 일기장에서 이런 글을 발견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삶이 힘들어 두 차례나 목숨을 끊으려 했던 그였다. 이제는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망의 밑바닥에서 그를 다시 끌어올린 것은 결국 가족이었다.

대기업 관리직 간부로 일했던 김씨는 2003년 봄 명예퇴직을 했다. 이름은 '명예 퇴직'이었지만 사실은 별로 명예롭지 않은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그만뒀다. 20년 넘게 다닌 회사였지만 떠날 때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 후 일은 꼬였다. 퇴직금을 중국 무역사업에 투자했다가 실패했다. 수천만원을 지인에게 빌려줬다 떼이고, 주식 투자로도 큰 돈을 날렸다. 알거지가 된 그는 충남 금산의 고향으로 내려갔다. 몇달간 자포자기 상태로 방랑자처럼 지냈다. 이런 노숙자였던 김씨는 아빠의 재기를 굳게 믿는 아들의 일기장을 본 뒤 마음을 바꿨다.

◆쉬지 않고 장사한다=이런 저런 창업설명회를 찾아다녔다. 장사를 하려면 뭐가 필요한 지, 주의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배웠다. 마침내 그는 지난해 4월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삼겹살집 '돈씨네 돈천하' 가리봉점을 열었다. 돈을 벌려면 그래도 고깃집이 낫다는 주변의 조언을 따랐다. 처갓집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30평 점포비(권리금+보증금) 7000만원과 개설 비용 5000만원 등 1억2000만원의 창업 비용을 겨우 마련할 수 있었다. 김씨는 "예전에 다른 사람이 네 차례나 음식점을 하다가 망한 자리여서 개업할 때 무척 긴장했다"고 말했다.

명절 이외에는 연중 무휴로 문을 열었다. '죽어도 가게에서 죽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김씨는 명함에 자신을 가게 대표나 사장이 아니라 '이사'로 적었다. 열심히 손발을 움직이겠다는 마음가짐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김씨는 "현재 평일 기준으로 하루 평균 200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밝혔다. 주말에는 근처 벤처기업들이 쉬기 때문에 매출이 절반 정도로 준다. 월 평균 매출은 5600만원, 가족 인건비를 일부 포함한 순수입은 1600만원 가량이라고 했다.

◆성공비결은 고객 감동=지난 6일 오후 8시쯤 김씨의 가게를 찾은 기자는 일부러 삼겹살 대신 간단한 저녁식사만 주문했다. 바쁜 시간이었지만 그는 전혀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밥값을 내고 받은 거스름돈은 빳빳한 새 돈이었다.

잠시 후 취재 목적을 밝히고 그와 마주 앉았다. 김씨는 고객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한국은행 본점까지 가서 1000원과 5000원권 지폐와 100원.500원짜리 동전을 새 돈으로 바꿔온다고 했다. 지천으로 널린 삼겹살집과는 다르게 튀어야 했고 고객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선 이런 차별화 전략이 필요했던 것이다. 김씨의 수첩에는 고객별 특성과 인상착의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김 이사. 키가 작고 검은 옷을 잘 입고 다님. 파 무침을 특히 좋아함' '이 사장. 직원들과 회식이 잦음. 비가 오는 날에는 꼭 들러 소주 한잔을 즐김. 소금을 곁들인 참기름을 즐겨 찾음'. 김씨는 단골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고객 이벤트도 자주 만들었다. 소주 뚜껑에 100원이나 500원 동전을 붙여 내놓았다. 평소 100병 팔리던 소주가 그날은 150병이나 나갔다.

◆전문가 평가=한국창업전략연구소는 음식 맛과 고객 서비스, 입소문 마케팅을 성공 포인트로 꼽았다. 간결한 메뉴와 시골 냄새가 나는 가정식 반찬, 주변에 칼칼하고 매운 맛을 좋아하는 고객이 많다는 점에 착안한 김치말이 국수나 김치찌개 등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가게 밖으로 나가 손님을 맞고, 허리 아픈 고객에게는 푹신한 쿠션을 주고, 양푼 비빔밥을 먹으러 온 손님에게는 "시골에서 가져온 참기름"이라며 직접 따라주는 등 살가운 고객 서비스도 호평을 얻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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