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암환자 골수이식 거부반응 획기적 개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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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7면

백혈병 환자인 신모(17)군은 두달여 전만 해도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했다. 지난 1년 동안 아홉번에 걸쳐 고통스런 항암제 치료를 받았지만 전혀 차도가 없는 데다 조혈모세포 이식조건에 정확하게 맞는 공여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

그러나 지금 신군의 몸 속에선 암세포를 찾아볼 수 없고, 대신 아버지(44)의 건강한 골수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새로운 조혈모세포 이식 기법으로 새 생명을 얻은 것.

가톨릭의대 성모병원 혈액내과 김춘추 교수팀(김희제·박윤희·민우성)이 시도한 이 방법은 그동안 조직적합항원 불일치라는 불가항력의 벽을 깼다는 점에서 환자들에게는 복음과도 같다. 조직적합항원이란 일종의 인체 내 거부반응 시스템. 가장 중요한 거부반응 항원 8가지 중 1~1.5개만 맞지 않아도 이식받은 사람이 생존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다.

예컨대 부모와 자식간의 조직적합항원 일치율은 50%에 불과하다. 8개 조직적합항원 중 4개만 맞으니 신군에게 부모의 골수를 이식해서 살아날 확률은 0%.

김교수팀은 이탈리아 페루자팀이 시도했던 조직적합항원 불일치 환자의 이식 사례에 주목했다. 그러나 이탈리아팀이 사용했던 치오테파라는 항암제의 생산 중단으로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야 했다.

연구팀은 다른 항암제인 부설판을 사용하고, 이외에도 방사선치료와 면역억제제 등 네가지 병용 요법을 고안했다.

아버지의 골수가 환자인 아들에게 들어가도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독특한 전(前)처치요법을 적용한 것.

특히 환자 아버지의 몸에는 자연살해세포가 활성화되어 골수와 함께 환자 몸에 이식됨으로써 치료 가능성을 높였다. 자연살해세포는 환자의 몸에서 활동하며 남아있는 암세포를 잡아먹을 뿐만 아니라 면역거부 반응을 억제하는 기능도 함께 하는 면역세포.

연구팀은 이식 후 20일이 지난 현재 환자의 몸속에 아버지의 골수가 1백% 생착해 정상인과 같은 건강한 혈액이 자라고 있음을 확인했다.

김희제 교수는 "국내에는 공여자를 찾지 못하거나 항암제가 전혀 소용없는 악성 백혈병환자가 매년 5백여명씩 생겨난다"며 "그동안 치료를 포기했던 환자들이 새 삶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조직적합항원이 일치하지 않은 백혈병환자 치료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지만 세브란스·삼성서울병원·아주대병원 등에서도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고종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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