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미스’ 시대 … 적령기 미혼율 30년 새 5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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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동네의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김모(29·여·서울 서대문구)씨는 얼마 전 억지로 맞선을 봤다. 오빠도 아직 미혼이지만 “여자는 더 나이가 차면 결혼하기 어렵다”는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서다. 하지만 오랜 연애 끝에 결혼한 그녀의 친구는 만날 때마다 남편이나 시댁과의 갈등을 늘어놓으며 “넌 너무 빨리 결혼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이 때문인지 김씨는 “비록 맞선은 봤지만 당분간 결혼할 맘은 전혀 없다”고 말한다.

흔히 결혼 적령기로 얘기되는 20대 후반 여성들의 미혼율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0년 만에 5배가량 늘었다. 게다가 기혼 여성들도 10명 중 한 명 정도만이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답할 만큼 결혼 기피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변용찬 선임연구위원의 ‘결혼과 출산율’ 보고서에 따르면 25∼29세 여성의 미혼율은 1975년 11.8%에서 2005년 59.1%로 크게 높아졌다. 특히 90년 22.1%를 기점으로 2000년 40.1%, 2005년 59.1%로 급격히 치솟는 추세다.

20대 초반(20∼24세) 여성의 미혼율도 75년 62.5%에서 2005년에는 93.7%로 껑충 뛰었다. 30대 초반(30∼34세) 역시 2.1%에서 19%로 높아졌다. 그 결과 평균 초혼 연령도 늦어져 81년에 남성은 26.4세, 여성은 23.2세였던 것이 2008년에는 남성 31.4세, 여성 28.3세로 각각 다섯 살씩 많아졌다.

또 보고서에 따르면 미혼 남녀들(3314명)은 2009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결혼하지 않는 이유’로 ▶결혼하기에는 이른 나이 ▶교육을 더 받고 싶어서 ▶자아 성취와 자기 개발을 위해서 등을 주로 꼽았다. ▶소득이 적어서 ▶결혼 비용이 준비 안 돼서 ▶실업이나 고용상태 불안 등 경제적 이유도 32%가량 됐다.

문제는 결혼을 한 여성도 결혼의 필요성을 굳이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해 전국의 기혼 여성 358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답한 경우는 14%에 불과했다. 반면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응답은 31%나 됐다. ‘안 하는 게 낫다’는 5%였다.

변 연구위원은 “혼외관계로 인한 출산이 50%에 이르는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결혼과 출산의 상관관계가 매우 높다”며 “그런데 결혼을 하더라도 늦은 나이인 경우가 많다 보니 자녀를 많이 낳지 않게 돼 결국 저출산 문제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초혼 연령을 낮출 수 있는 다양한 지원책 등 결혼 친화적인 정책방안이 강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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