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국제결제은행에 첫 입성한 한국인 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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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스위스 바젤에 본부를 둔 국제결제은행(BIS)에 한국인 경제학자가 첫 입성했다. 재정경제부 사무관 출신인 심일혁(35) 박사다.

최근 가족들과 함께 바젤에 정착한 심 박사는 "정규직으로 BIS에 근무하는 첫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어깨가 무겁다"며 "여기서는 내가 한국인의 표준이 될테니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행정고시 36회 출신인 그는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 사무관으로 근무하던 1999년 유학을 떠나 지난해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친정인 재경부로 복귀하는 대신 BIS의 정규직 모집에 응모해 채용됐다.

"핵심적인 국제기구에 좀 더 많은 한국인들이 진출해 국가의 위상을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심 박사는 "이제 한국 정부 대신 국제기구에서 일하게 됐지만 조국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심 박사가 일하는 곳은 BIS의 통화경제국이다. 책임자급 이코노미스트(연구위원)로 각국의 금융제도와 금융시장에 대해 연구해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한다.

최근 BIS의 최대 이슈는 내년부터 2007년 말까지 BIS 회원국에 도입되는 '신(新) 바젤협약'이다. 신 바젤협약은 금융기관의 자기자본비율을 평가하는 새로운 방법이다. 대출 받은 기업이나 개인의 신용도에 따라 위험가중치를 반영하는 게 골자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기 회복이 지연돼 신용불량자가 줄지 않고 있어 신 바젤협약을 적용할 경우 8% 이상으로 가까스로 맞춰놓은 금융기관의 자기자본비율이 다시 낮아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심 박사는 "신 바젤협약의 시행으로 세계 금융시장의 지각변동이 예상되는데도 국내 은행의 대응은 미흡한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그는"BIS가 조사해보니 한국은 금융기관의 리스크(위험) 관리업무를 책임질 만한 전문가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전반적인 능력도 국제 수준에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왔다"며 "지금부터라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BIS는 매년 주요국의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여 회의를 열기 때문에 전세계의 고급 금융정보가 유통되는 장"이라며 "한국은행도 BIS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 BIS=미국 등 55개 국가의 중앙은행이 회원으로 금융감독 및 금융시장제도의 표준을 만드는 국제기구다. 원래 제1차 세계대전 후 전쟁배상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각국 정부 대표들이 모여 만들었다. 이후 금융기관의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제정하고 이행 여부를 감독하는 국제금융기구로 발전했다. 한국은 97년 1월 가입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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