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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트 괴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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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2면

오스트리아의 쿠르트 괴델(1906~1978)은 수학기초론의 대가로서 20세기 최고의 논리학자로 평가되는 수학자다. 미국의 시자지 『타임』이 밀레니엄 특집으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 1백명을 뽑았을 때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논리에 대해 철저한 연구를 한 대가였지만 그의 죽음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비논리적이었다. 가난해 먹지 못한 것도 아니고, 시대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단식 투쟁을 한 것도 아니라, 누군가 자신을 독살하려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음식을 끊고 굶어 죽었다.

20세기 초는 유클리드 이후 최고의 수학자로 칭송받고 있는 힐베르트가 활약하던 시대였다. 그는 이른바 '공리주의(axiomatism)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고 있었다.점·선·면 등 몇몇 정의와, 증명할 필요가 없는 몇 개의 원리(공리)만 있으면 수학의 모든 것을 이끌어내고,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 공리주의다. 힐베르트와 그를 지지하는 수학자들은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수학체계를 세우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정의와 공리들을 골라내고 있었다.

괴델 역시 힐베르트의 공리주의 프로그램을 뒷받침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엉뚱하게도 힐베르트의 시도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1931년 괴델이 만든 '불완전성의 정리'가 그것이었다. 그는 이를 통해 유한한 개수의 정의와 공리만으로는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는 수학체계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힐베르트에게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괴델의 정리는 몹시 난해하지만 결국 20세기 수학기초론의 핵심이 되었다. 이 정리는 "어떤 컴퓨터라 해도 풀 수 없는 수학적 문제가 있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불완전성의 정리'를 만들 때까지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연구를 하던 괴델은 조국이 나치의 영향 아래 들어가자 미국으로 건너갔다. 거기서 프린스턴 고등연구원에 있으면서 아인슈타인·오펜하이머·노이만·바일 등과 같은 세계적인 과학자들과 함께 지내며 연구를 계속했다.

그의 죽음은 자신이 이룩한 정리만큼이나 아리송한 것이었다. 말년에 십이지장궤양으로 피를 토한 뒤 누군가 자신을 독살하려 한다고 생각한 괴델은 결국 두려움에 음식을 먹지 못하고 굶어 죽었다. 사망 당시 그의 키는 168㎝였는데 몸무게는 29.5㎏에 불과했다.

괴델의 사망진단서에는 '인격 장애에 의한 영양 실조와 기아에 의해 사망했다'고 적혀 있다.

비록 괴델의 죽음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의 업적은 수학·논리학·철학·언어학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분야와 같은 컴퓨터 과학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지성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포항공대인문사회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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