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무기 시대 멀지 않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62면

"2020년 9월. 적군이 공격용 미사일에 연료를 채우는 장면을 미국의 정찰 위성이 포착했다. 미국 우주사령부 상황실의 전자 지도에는 적군의 기지를 나타내는 부분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우주사령부는 즉각 이를 정부에 알리고 공격 승인과 대륙간 탄도탄(ICBM) 요격 위성의 전투태세 돌입을 요청했다.

잠시 후 적군은 10기의 ICBM을 차례로 발사했다. 그러나 세번째 미사일부터는 웬일인 지 고장을 일으켜 발사하지 못했고,앞서의 두 기는 발사하자마자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걸프만에 추락했다.

다음날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특수 전자기파 공격으로 적군의 미사일 통제 시스템을 무력화시켜 대부분 발사되지 못했으며, 발사된 두 기는 요격 위성이 레이저로 떨어뜨렸다"고 발표했다.

SF영화의 줄거리가 아니다. 미국이 내년 2월 콜로라도주 슈리버 공군기지에서 실시할 '우주전쟁 시뮬레이션'의 가상 시나리오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9·11 테러 후 우주무기 옹호론자들이 지구 상의 모든 곳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는 위성 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목청을 드높이고 있다. 덩달아 러시아·중국 등 강대국들도 재래식 무기 개발 예산을 축소하고 우주무기체계 개발에 큰 힘을 쏟고 있다. 때문에 앞으로 15년쯤 뒤면 위성 무기들이 실제 전쟁에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구상하거나 개발 중인 위성 무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미사일 요격용과 위성 무기를 격파하는 이른바 '킬러위성'이다.

미사일 요격 위성은 레이저를 쏘는 것과 탄환을 쏘는 것이 있다. 수백~수천㎞ 떨어진 미사일을 레이저로 요격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큰 에너지를 내는 장치는 무거워 위성에 실을 수 없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화학 레이저'. 두 가지 물질이 화학 반응할 때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알파-고에너지 레이저'라는 화학레이저를 탑재한 위성을 개발 중이다. 또 지상에서 쏜 고에너지 레이저를 특수 거울로 반사시켜 미사일을 요격하는 '거울 위성'도 개발하고 있다.

탄환으로 미사일을 요격할 때의 문제는 탄환의 속도다. 최소 미사일 순항 속도의 1.6배인 시속 4만㎞ 정도가 돼야 한다. 화약을 터뜨려 나가는 탄환보다 15배 이상 빠른 것이다. 속도 문제는 '플라즈마 레일 건'이라는 것으로 해결한다.

탄환은 특수 플라스틱에 특수 합금을 얇게 도금해 만든다. 여기에 강한 전류를 흘려주면 합금이 순식간에 증발하며 이른바 '플라즈마'상태가 되는데, 이때 강한 자기장을 걸어주면 플라즈마가 순식간에 가속되면서 플라즈마에 둘러싸인 특수 플라스틱도 엄청난 속도를 얻게 된다.

위성 무기를 요격하는 '킬러 위성'은 목표 위성의 궤도를 찾아가 스스로 폭발해 금속 파편을 퍼붓는다. 위성 무기는 전자 회로의 일부분만 부서져도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므로 이런 방식이 효과가 크다. 러시아는 이미 15차례 이상 킬러위성 실험을 했으며, 레이저를 이용한 위성 요격무기도 개발 중에 있다. 또한 중국도 킬러 위성의 지상실험을 최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미국은 지난해 1월에도 슈리버 공군기지에서 우주전쟁 시뮬레이션을 했다. 2017년으로 가상 설정된 이 전쟁 게임에서 세계 각국은 우주무기 초강대국(미국·러시아 등),우주전쟁 수행능력 준 보유국(중국·인도 등), 그리고 주변국가로 나뉘어 가상 전쟁을 했다.

한국은 이 가상전쟁에서 주변 국가에 머물렀다. 실제 우리의 우주무기체계나 우주시스템 기술은 낮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에 이르러서야 그 중요성을 인식해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우리도 15년 후 '우주안보' 능력을 갖추려면 이 분야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시급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