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교육도 이젠 개방 대상 : 국내교육 업그레이드 계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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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교육엔 이제 더이상 국경이 없다. 지금도 약 16만명이 해외 유학 중이고, 국내에도 6천여명의 외국인 유학생이 들어와 있다. 재학 중 교환학생으로 외국에 나가 경험을 쌓는 대학생들은 점점 늘어난다. 일부 대학에선 외국 대학과 교육 프로그램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수험전문 학원체인인 카플란(KAPLAN)처럼 국내에 합작으로 진출한 외국계 학원들도 이젠 전혀 낯설지 않다. 그러나 뉴라운드협상 무대에서 우리 나라는 아직도 '교육을 하나도 개방하지 않은 국가'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최종협상 때 우리는 교육을 개방 계획에서 제외하고 단 한건도 '양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당시 미국·EU·일본 등은 교육도 개방 대상에 포함해 몇몇 분야를 양허했다).

대신 우리 교육 서비스 개방은 미국과의 협상에 의해 이뤄졌다. 미국이 92년에 처음으로 학원 개방을 요구한 이후 우리는 95년부터 차례로 예체능계·기술계·외국어·일반교과목 학원을 개방했다. 97년에는 학원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인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꿨다. 비로소 학원만큼은 '완전 개방'을 한 것이다.

이제 뉴라운드협상 교육분야에서 우리와 다른 나라들이 서로 주고받은 개방 요구(표 참조)를 보면, 우리도 이제는 교육을 개방 대상으로 삼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만큼 세상이 바뀐 것이다.

우리는 중국·호주·일본,그리고 인도네시아·필리핀·태국 등 동남아 국가들에 대해 개방 요구를 했다. 우리 교육기관들의 생각·계획을 물어 그를 토대로 내놓은 요구들이다. 예컨대 중국에 나가 한의학·한국학 강좌를 열겠다는 대학이 있다. 또 필리핀에서 현지 대학과 합작으로 영어 또는 한국어 강의 등을 개설,교환학생도 서로 받고 학점도 서로 인정하도록 하겠다는 대학도 있다.

이와 관련, 중국도 우리에게 한방·중국어 교육기관의 합작 또는 단독 설립을 요구해온 상태다. 그러나 중국처럼 아주 구체적으로 개방 요구를 해온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일부 선진국은 기업 내 훈련,직업 훈련, 토플·토익 같은 테스트 서비스 등 구체적인 분야를 찍어서 개방 요구를 해왔고, 국내 전문대학과의 합작을 통해 중등교육 프로그램을 열고 분교도 설립하도록 해달라는 요구도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포괄적으로 교육 개방을 요구해온 상태다. 특히 EU는 교육에 관해서는 개방 요구를 하지 않았다.

이를 놓고 외교통상부나 교육인적자원부 등 관계부처는 "우리가 받은 교육개방 요구가 별로 심각한 수준이 아니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EU가 빠진 것부터가 그렇고, 미국·일본 등 선진국들의 요구도 소소한 것이거나 유보적 입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에 우리가 받은 교육개방 요구는 심각하지 않더라도, 이번 기회에 우리 스스로가 교육 개방을 심각하게 다뤄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성극제 교수는 "교육 개방의 핵심은 결국 대학"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선진국 대학들이 한국에 진출할 매력이 별로 없다. 만일 들어온다면 시설은 한국 대학 것을 쓰고 강의만 하는 등의 합작형태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좋은 교수들이 자기 네트워크 등을 희생하면서까지 한국에 와서 몇년씩 강의하려 하겠는가. 또 우리 학생들도 실력이 있으면 아예 유학을 가려하지 국내에 개설한 교환 프로그램엔 별 관심이 없다. 결국 우리가 교육 개방을 해도 대학보다는 어학·음악·사진·디자인·패션 등의 비정규 교육기관이 들어올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니 이번에 정규교육까지 다 열어도 별 영향이 없을 것이다."

사실 이번에 우리가 외국에 대해 교육기관을 합작 또는 단독으로 설립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은 "우리도 당신네가 요구하면 합작·단독 교육기관 설립을 허용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실상 대학 등 외국 정규 교육기관의 한국 진출은 막혀있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는 모든 교육재단은 비영리 재단이어야만 하게끔 묶어놓고 있으므로 외국 대학이 국내에 들어온다 하더라도 본국에 이익금을 보낼 수 없다. 당연히 자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도 없다. 또 수도권에는 대학을 세울 수 없다는 규제도 있다.

교육개발원 이만희 부연구원은 이들 규제부터 풀고 좋은 대학을 적극적으로 유치한다는 발상 전환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외국의 질높은 대학을 하나쯤 본보기로 유치할 필요가 있다. 인센티브를 주어서라도 외국 유명대학을 끌어오겠다는 정도의 마인드는 갖고 교육개방을 논의해야 한다. 대신 엄격한 심사로 제대로 된 대학을 골라서. '심각한 수준'이 아닌 외국의 교육개방 요구를 토대로만 교육개방을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물론 교육개방 불가를 외치는 교육계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그러나 중국 등과 주고받은 개방 요구에서 보듯, 이제 머지않아 교육재단 영리법인 허용 여부 등의 우리 교육제도 재검토는 '국제기준'에 맞춰 진행될 수밖에 없다.

<특별취재반>

김정수·김수길 경제전문기자 홍병기·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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