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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 치료제는 한국의 미래 성장동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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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고성능 컴퓨터와 전문화된 소프트웨어, 여기에 전 세계를 연결하는 과학 네트워크가 분자생물학과 만나 신약개발을 탄탄하게 지원한다.

분자생물학을 통하면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 단백질에만 작용하는 분자 물질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지식이 쌓이면서 특정 단백질들이 표적 약물과 상호작용한다는 점을 이용해 이전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 결과 세계 바이오·제약업계는 생물학 분야의 최신 지식에다 분자 모델링, 이미징 기술 등 IT를 융합하면서 ‘3세대 의약’이라는 ‘표적 치료제’를 개발해 냈다. 글리벡(혈액암 치료제), 이레사(폐암 치료제), 아바스틴·허셉틴(유방암 치료제), 넥사바(간암 치료제) 같은 새로운 항암 치료제가 그것이다. 표적 치료제는 환자의 ‘삶의 질’과 생명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암 등 난치성 희귀 질환뿐 아니라 급성·만성 질환을 고치는 표적 치료제 개발이 계속되고 있다.

미래 의학에서 분자진단학을 빼놓을 수 없다. 분자진단은 환자 개개인의 유전적 특징을 파악해 특정 질환의 진행 경과를 조기에 중지시키거나, 발생 때부터 근원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이런 접근법이 바로 ‘맞춤 의학(Personalized Medicine)’ 또는 맞춤 치료다.

맞춤 의학은 환자 개개인의 유전적 차이를 밝히는 분자진단과 이에 따른 표적 치료법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또한 환자 개개인의 적절한 치료법을 결정하고, 부작용 발생 위험까지 예측할 수 있다. 불필요한 치료를 하지 않아도 돼 의료비용이 떨어지게 된다.

신약 후보 물질 탐색과 개발, 분자진단의 전 과정에 걸쳐 IT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IT에 기반을 두고 개발된 의약품은 개인 맞춤 치료로 패러다임을 전환시키고 있다.

인류는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게 됐다.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이미 79세로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고령화 사회로 급격히 진입하면서 의료제도도 크게 변모할 것이다. 맞춤 치료제는 고령화에 대비한 한국 의료제도 개혁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한국은 앞선 IT와 우수한 의료 인프라, 높은 수준의 임상연구 수행능력을 갖췄다. 또 뛰어난 바이오테크 역량이 여러 경로에서 입증됐다.

한국이 선진 의료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가 되려면 글로벌 협력 강화, 의료산업 분야의 시장 강화, 그리고 정책 입안자들의 결단이 필요하다. 바이오·제약 산업은 장기간 투자를 요하는 고위험·고수익 산업이다.

신약 한 가지를 개발하는 데 12∼14년의 시일과 15억 달러(약 1조8000억원)의 엄청난 돈이 든다. 물론 성공보다 실패 가능성이 크다. 이런 곳에 과감한 투자를 유도하려면 시장의 투명성, 예측 가능한 정책, 신약에 대한 적정가 보장 등 혁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정책이 전제돼야 한다.

피터 야거 한국노바티스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