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축제'와 '동네 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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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난 1일 막을 내린 '2002 전주세계소리축제'를 보면서 적잖이 아쉬움을 느꼈다. 한국 최대의 국제음악제라는 외형적 규모에 걸맞는 독특한 메뉴의 개발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축제의 간판 프로그램인 초청작 중 상당수는 이번 시즌 수도권과 다른 지방에서 상연된 것으로 채워졌다.

예컨대 티베트 명상 음악가 나왕 케촉의 공연은 지난달 경기도 가평에서 열린 정신세계원 명상축제 참가 작품이며, 인도 음악가 5명과 실내악단 예랑의 '아유타에서 불어온 바람'은 축제 기간 중 서울 국립국악원 무대에 올랐다. 그런가 하면 부천시립합창단의 '세계의 합창'은 지난 6월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과 같은 프로그램이다. 안데스 시사이 밴드는 2000년부터 정동극장과 서울 지하철 예술무대에 단골로 출연해왔고, 중국에서 온 '돈황악무'도 축제기간 중 서울 국립극장에서 무료로 상연됐다. 음악동화 '심청아 나랑 놀자'와 오페라 '아빠 나 몰래 결혼했어요', 우광혁의'세계악기 여행'은 전국 순회공연 중이다. 음악극 '혼불'과 창극 '명창 권삼득'은 이번 시즌 전주·남원 무대에 오른 작품이다.

지난 7월 독일 라인가우 페스티벌에서 만난 미하엘 헤르만 총감독의 얘기가 떠오른다. 초청 연주자·연주단체들과 계약을 할 때 자동차로 4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인근 도시에서는 축제를 전후로 3개월 동안 공연을 할 수 없도록 못박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난해 초청한 연주단체도 프로그램에서 제외한다. 연주자·프로그램의 희소 가치 없이는 축제의 존재 이유가 희박해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국내외 단체들의 겹치기 출연이나 재탕(再湯) 공연을 엮어 축제라고 한다면 스스로 '동네 잔치'로 전락시키는 것이나 다름 없다. 줄어든 예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라면 차라리 축제 기간이나 프로그램을 줄이면서 내실을 기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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