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엉성한 水防대책]"감천둑 붕괴 3시간 지나 알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태풍 '루사'의 피해가 늘면서 엉성한 재난 예방체계와 공무원들의 안이한 대응 자세가 문제점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경북 김천지역 주민들은 경보방송을 통해 태풍의 진로와 위력 등을 수시로 알려 대비토록 했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시 당국을 성토한다. 경남 합천군 청덕면의 가현둑 재 붕괴와 충북 영동군의 극심한 수해는 우기(雨期)에 대비하는 지자체의 수방대책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재해 경보체계 구멍=경북 김천시 황금동 주민들은 이번 수재는 폭우라는 천재지변에 지자체의 판단 착오와 미비한 재해 경보체계가 겹쳐 피해가 커졌다고 주장한다.

황금동 주민들과 황금시장 상인들은 "김천시가 감천의 범람 여부 등 재해상황을 주민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바람에 대비시간이 부족해 피해가 커졌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지난달 31일 오후 6시30분쯤부터 시장에 물이 차오르자 거창 쪽 우회도로(감천둑) 입구에 모래포대를 쌓아 강물의 역류를 막기에 바빴다.

그러나 물이 계속 역류하는 바람에 오후 9시쯤 주택가와 시장이 1m 이상 물에 잠기면서 몸만 간신히 빠져나왔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때까지도 감천둑 붕괴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감천둑은 오후 6시쯤 붕괴되기 시작했다.

지하 과자창고가 침수된 김천상회 주인 김순옥(49)씨는 "오후 6시쯤 창고 건물주의 전화를 받고 가보니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며 "시의 경고방송은 들은 적이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황금시장 일대를 관할하는 양금동사무소 관계자는 "주민 대피를 위해 오후 3시부터 안내방송을 하고 통장들에게 전화도 했지만 주민 대부분이 집에 없었다"고 말했다.

◇합천군 가현둑 재붕괴=지난달 호우 때 붕괴됐던 경남 합천군 청덕면 가현리 가현둑이 24일 만에 또다시 무너지자 주민들은 허탈감에 빠졌다. 주택 10여채가 침수되고 20여가구가 대피했다.

가현마을 새마을지도자 노창석(46)씨는 "가물막이 공사를 하면서 흙 다지기를 제대로 하지 않는 등의 부실공사 때문에 둑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경남도 조사 결과 합천군은 응급복구를 하면서 기존의 둑 높이 21m보다 4m 낮은 17m만 쌓아 강물이 넘친 것으로 드러났다.

또 1차 붕괴 후 물이 완전히 빠진 지난달 20일부터 주민들의 반대로 응급복구에 착수하지 못하다가 태풍이 임박한 지난달 28일에야 빗속에서 복구공사를 벌이는 등 대처도 소홀했던 것으로 지적된다.

이에 대해 물막이 공사를 맡았던 농업기반공사 측은 "부실공사가 아니라 합천지역 수위 관측사상 최고(17.8m)를 기록한 자연재해가 원인"이라고 해명했다.

합천군 청덕면·적중면 등은 황강과 낙동강의 합류지점으로 낙동강물이 불어나면 황강물이 빠지지 못해 범람하기 쉬운 구조다. 이 때문에 경남도가 구불구불한 황강을 직선화하는 공사를 4년 전부터 추진 중이지만 민간자본을 유치하지 못해 진척이 없는 상태다.

◇교량공사 시설물 처리 소홀=충북 영동군 영동읍 계산리 주민들은 외곽도로 개설을 위해 영동역 맞은편에 가설 중인 교량과 영동시장 앞 영동4교 건설 공사장 때문에 수해가 더 커졌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31일 호우로 약 1.5㎞ 떨어진 두 다리가 시가지를 사이에 두고 물길이 굽이치는 곡선 구간에 위치한 데다 공사 중이던 교각이 원활한 물 흐름을 방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올해 착공한 이들 다리는 최근 가설된 교각 위에 상판을 얹기 위한 거푸집이 설치돼 있고 그 밑으로 철제 지지대가 빽빽이 세워져 있다. 이 때문에 떠내려온 각종 쓰레기가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지지대와 교각 사이에 걸려 전체가 제방 높이의 수중보 역할을 했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실제 이 지지대들이 거센 물살에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면서 범람 일보 직전의 영동천 수위가 곧바로 내려가 이같은 주민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주민 金모(37)씨는 "교각 사이에 걸린 쓰레기더미로 인해 하천물이 빠르게 흘러내려오다 거대한 여울을 만들며 유속이 떨어졌다"며 "당국이 북상 중인 태풍 예보에 대비해 배수 여건을 개선했더라면 역류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영동군 관계자는 "하천 구조물이 없더라도 폭우가 시간당 60㎜에 이를 만큼 집중된 데다 하천폭이 좁다보니 원활한 배수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남영·김상진·홍권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