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기획] 베테랑 특전용사 강경희 중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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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낀다는 높이인 11m. 로프 하나에 의지해 땅으로 곤두박질하는 아찔한 순간이지만 날렵한 움직임엔 한치의 주저함도 없다. 단정히 묶은 머리 위에는 특전사의 상징인 검은 베레, 녹색과 갈색 크림으로 위장한 얼굴에선 두 눈만 날카롭게 번득인다. 가뿐히 착지한 뒤에야 비로소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진다.

특전사 여군중대의 강경희(30) 중사. '특전사 중의 특전사'라는 대테러팀을 이끄는 지대장이자 1만피트 상공에서 고공낙하 기록만 1120여회인 베테랑 특전요원이다. 테러범 소탕전과 인명구출 등 각종 특수작전, 전시에는 적진 한가운데 침투해 주요 시설을 폭파하는 것이 그의 임무다.그의 하루는 오전 8시, 5㎞구보로 시작된다. 이어 남한산성 2시간 행군, 근력 단련과 특공무술 훈련, 권총과 소총사격 훈련 등이 오후 5~6시까지 계속된다. 그렇지만 퇴근 무렵엔 "밥을 먹기 시작한 둘째 아이에게 어떤 반찬을 만들어 줄지가 요즘 가장 큰 고민거리"라는 평범한 주부로 변신한다. 오후 6시를 경계로 군인과 예쁜 두 딸의 엄마를 넘나드는 셈. 그는 "점수를 매긴다면 군인으로서는 90점, 엄마로서는 70점 정도"라며 웃었다.

어린 시절 국군의 날 행사에서 본 군복과 절도있는 동작에 반해 군인의 길을 선택했다. 1995년 고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여군학교에 입대했고, '한발 더 나아가고 싶어서' 특전사에 지원했다. 야간에 낙하산을 타고 산악지대에 투하돼 주어진 시간 안에 정확한 목표지점으로 돌아오는 훈련, 고립된 상황에서 생존훈련, 일주일 동안 400여㎞를 걷는 천리행군 등 혹독한 과정을 버텨내고 당당히 검은 베레를 썼다.

"여자로서, 어머니로서 군 생활이 힘겹지는 않은가"라는 질문에 그는 지난해 5월 도명산에서의 산악훈련 이야기를 꺼냈다.

'20kg이던 군장의 무게가 늘어나기라도 한 걸까. 밤샘 행군 이틀째, 어깨가 무너져 내릴 듯 뻐근하다. 이 정도로 헉헉거릴 내가 아닌데, 역시 아줌마는 어쩔 수 없는 걸까. 출산 전까지만 해도 1분에 60개는 거뜬했던 윗몸일으키기를 6개밖에 하지 못했다. 이대로는 마지막 날 체력측정도 통과하지 못할 텐데….'

출산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지 불과 3주. 체력이 회복되지 못한 상태였다. 첫 아이 때도 출산휴가를 마치고 바로 훈련에 돌입한 적이 있었던 터여서 당연히 해낼 수 있을 줄로 믿었는데 웬걸. '이번 훈련만 마치고 나면 전역 지원서부터 써야지'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란다. 그로서는 군생활 최대의 위기였다. 저녁 일과를 마친 뒤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역시 대테러부대 소속 특전부대원인 남편 이상목(32) 선임 담당관과 의논할 셈이었다. 전화를 받은 건 맏딸 도연이(6). "동생은 내가 잘 돌볼 테니 엄마도 훈련 잘 마치고 빨리 오세요"라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이담에 두 딸이 자랐을 때 '여자여서, 아줌마여서 포기했다'고 변명하고 싶지 않았어요. 선택한 길을 끝까지 해내는 엄마가 되자고 이를 악물었죠." 강 중사가 남은 훈련과 체력측정을 무사히 마친 것은 물론이다.

그의 저녁은 행복의 반쪽 찾기다. 낮동안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시어머니께는 감사한 마음 반, 죄송한 마음 반. 정신없이 집안 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가끔은 "이거 산악훈련을 받는 편이 더 쉽겠다"는 생각이 드는 때도 있단다. 그래도 늘 함께여서 누구보다 아내를 잘 이해하는 남편이 있어 힘들지 않다. 무뚝뚝한 성격이지만 "고공강하는 몰라도 청소는 내가 더 잘한다"며 앞장서 도와줄 때는 너무 사랑스럽다며 넌지시 자랑한다.

여군 특전사를 꿈꾸는 젊은 후배를 위한 그의 충고. "아직도 여군 하면 한 팔로 팔굽혀펴기를 하는 우락부락한 인상,'여자도 아닐 것'이라는 인식이 많아요. 하지만 여자와 군인, 어느 것도 포기할 필요는 없답니다. 남군들과 똑같이 하는 훈련을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요? 걱정 마세요. 교육 과정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차지하는 것은 항상 여군이랍니다."

글=신은진 기자<nadi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shotgun@joongang.co.kr>

*** 여군 특전용사를 꿈꾼다면 올해 여군 특전부사관 선발인원은 전.후반기 4명씩 총 8명. 현재 159기 지원자를 모집 중이다. 다음달 26일까지 특수전사령부 홈페이지(http://www.swc.go.kr/)에서 인터넷 지원서를 작성하면 된다. 지원서 제출 후에는 신체검사. 인성검사.소양평가(수학.영어.한문 및 상식).체력측정.면접 등을 거쳐 오는 4월 최종 선발한다. 지원 자격은 고졸 이상인 만 18~27세 미혼여성으로 신장 155cm, 체중 45kg 이상이어야 한다. 시력은 좌우 0.7 이상(안경. 렌즈 미착용). 지난해의 경우 10명 선발에 341명이 지원, 34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문의는 특수전사령부 인사처 부관과 (02-3403-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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