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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의 경쾌한 性에 빗대어 멕시코 정치에'돌팔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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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지난해 높은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아쉽게 사라졌던 영화 중 하나로 '아모레스 페로스'(감독 알레한드로 곤살레스)를 들 수 있다. 격변하는 멕시코의 정치·사회를 작품 뒤에 숨겨놓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면모를 뮤직 비디오식의 날렵한 화면에 녹여냈다.

또 다른 멕시코 영화인 '이투마마'는 언뜻 '아모레스 페로스'를 떠올리게 한다. 멕시코의 불안한 정정(政情)을 군데군데 섞어놓은 게 그렇고, 또 영화를 끌어가는 주요 장치로 섹스를 동원한 게 그렇다. 그런데 분명 차이가 있다.

등장 인물이 주로 10대의 청소년에 집중된 '이투마마'가 훨씬 경쾌한 편이다. 질퍽한 성 농담이 가로지르는 할리우드 섹스 코미디인 '아메리칸 파이'류의 경박함마저 종종 감지된다. 삶의 관심이 오직 성에만 집중되는 그런 시기의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더 이상의 것을 말하려 든다. 시간 죽이기식의 화장실 농담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섹스에 앵글을 맞추되, 그것을 둘러싼 여러 형태의 사회적 함의를 불쑥불쑥 건드린다. 예컨대 교통 체증에 걸린 차 안에서 자위를 하는 아이들 옆으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피켓이 지나가는 식이다.

'이투마마'의 원제는 '이 투 마마 탐비엔'이다. 스페인어로 '너의 엄마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현직 국무장관을 아버지로 둔 부잣집 아들 테녹(디에고 루나)과 하층 계급 출신의 가난한 아이 훌리오(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그리고 남편이 바람이 난 테녹의 사촌 형수 루이자(마리벨 베르두)가 낡은 자동차를 타고 '천국의 문'이라는 가상의 해안으로 여행을 떠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에피소드가 중심축이다.

내년에 선보일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시리즈의 3편을 맡아 최근 화제가 됐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이투마마'에서 참을 수 없이 가볍게 넘쳐나는 청소년의 성을 매개로 멕시코의 혼탁한 정치와 사회를 능청스럽게 비웃는 수완을 보여준다.

특히 악동들에게 성의 가치를 일러주는 동시에 '성의 공유'란 급진적 주장을 펼치는 루이자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투마마'는 때론 불경스럽게 비칠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진 내용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기성 세대의 위선과 가식을 비판하는 칼날이 날카롭게 서 있는 것이다.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신인 남우상을 공동 수상한 두 소년이 대책없이 한심해 보이면서도 결코 밉지 않고, 또 그들이 영화 막바지에 체험하는 삶의 쓴맛에 공감이 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음달 6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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