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라크 공격' 갈수록 고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워싱턴·도쿄=김진·오대영 특파원]미국의 이라크 공격 방침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발이 확산되면서 미국이 고립 위기에 몰리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28일 "유럽과 중동의 국가들이 직설적으로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도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의 공격 지원 요청을 사실상 거부했다고 일 언론들이 이날 보도했다.

◇등돌리는 서방=조지 W 부시 행정부에 대한 비판은 러시아·중국은 물론 우방인 유럽국 사이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의 도미니크 드 빌팽 외무장관은 27일 연례 공관장회의에서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없이 이라크를 공격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무력에만 의존하면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라크 공격 불참을 이미 선언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도 이날 "딕 체니 미 부통령의 선제공격 주장은 잘못"이라고 직설적으로 비난했다.

일본도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자민당 간사장은 방일 중인 아미티지 부장관이 27일 이라크 공격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자 "현행 테러대책 특별조치법으로는 지원에 많은 제약이 있다"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아미티지 부장관과의 회동에 배석했던 후유시바 데쓰조(冬柴鐵三) 공명당 간사장은 "국제사회가 폭력(이라크)을 제거하려면 유엔헌장에 정해진 절차를 따라야 한다"며 안보리의 승인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심각해진 중동권 반발=1991년 걸프전 당시 연합군에 합류, 이라크 공격에 가담했던 중동 국가들도 반대입장을 노골화하고 있다. 그동안 가장 친미(親美)적인 성향의 중동 국가로 분류돼 온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가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25일 대(對)이라크 경제제재 조치의 핵심국인 미국을 '무시하듯' 걸프전 이후 처음으로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사우디 무역박람회를 연다고 발표했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도 27일 "이라크 공격을 바라는 아랍국가는 단 한 나라도 없다"고 강조했다. 중동 지역 미군 전력의 주축인 미 해군 5함대 사령부가 있는 바레인도 공격 반대를 천명했다. 이라크 공격기지 제공을 거부한 사우디아라비아를 대체할 만한 국가로 미국이 꼽아왔던 카타르도 26일 "기지 제공을 않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사우디 달래기=부시 대통령은 중동국가를 돌려세우기 위해 맹주격인 사우디아라비아 달래기에 부심하고 있다. 그는 27일 자신의 휴가지인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으로 반다르 빈 술탄 주미 사우디 대사와 그의 가족을 초청, 직접 안내하고 오찬까지 대접했다.

부시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골칫거리"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아델 알 주베이르 사우디 정부 대변인은 "우리의 공격 반대 입장엔 변함이 없다"고 발표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