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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하기 없기 ~하지 않기 … 금기에 갇혀 산 여성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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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조선 여성의 일생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엮음
이숙인 책임기획
글항아리, 392쪽
2만3800원

2010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수백 년 전 조선 땅에서 살다 돌아간 사람들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는 역사책보다는 텔레비전 사극 또는 영화이기 십상이다. 고증에 문제가 있거나 재미를 위해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을 종종 왜곡하는 일이 빚어지기도 한다. 아마도 조선 남성보다 여성에게 그런 경우가 더 많을 듯싶다. 역사의 절반은 여성의 몫이었음에도 기록의 역사, 기억의 역사에서 여성은 소외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루어진다 해도 조선시대 여성에 관한 지식과 정보의 대부분은 남성들 손에서 요리되었다.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HK 연구교수는 이런 이유 탓에 “어머니와 아내처럼 나를 돕는 존재거나, 기녀처럼 내 사랑의 판타지를 투사할 존재”로 이원화된 ‘공식적인’ 조선 여성상에는 남성의 욕망이 반영되어 있다고 분석한다. 황진이의 시조가 기생들을 모아놓고 벌인 백일장에서 공개적으로 불린 노래일 것이라는 정병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의 ‘사랑 타령일랑 집어치워라’가 한 예다. 애틋한 순정보다는 남성 손님의 취향과 요구를 반영한 말솜씨 과시였을 것이란 분석은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비공식적인’ 조선 여자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각 대학에서 한국문화와 여성학을 연구하며 가르치고 있는 필자 13명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공식 텍스트가 말하지 ‘않은’ 것 또는 말하지 ‘않으려고’ 한 것에 주목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일하되 일한 티내기 없기, 절로 산으로 떼지어 몰려다니며 놀기 없기, 기쁘거나 슬프거나 섭섭하거나 노여워도 겉으로 내색하기 없기, 두 번 이상 시집가기 없기, 알아도 아는 척 하기 없기, 질투하기 없기…끝없이 이어지는 ‘하기 없기’의 금기 조항은 역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했다는 가설을 가능케 한다. ‘History’보다 ‘Herstory’에 초점을 둔 13편 글은 풍부한 사진 자료와 함께 조선을 다시 돌아보게 해준다.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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