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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하우스 푸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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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아파트의 기원은 보통 고대 로마의 ‘인술라(insula)’에서 찾는다. 벽돌과 콘크리트 소재의 5층, 혹은 6층짜리 빌딩형 주택이다. 1층에는 상점 등 업무용 공간이 있었고, 위층은 살림집이었다. 일종의 주상복합이다. 인술라는 날림공사가 많았고, 배수시설이 여의치 않아 비위생적이었다. 후기 공화정 시대 급증한 로마 인구를 한꺼번에 수용하기 위한 주택 양식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모델을 제시한 사람은 프랑스 근대 건축운동을 이끈 르코르뷔지에다. 그가 1960년대 마르세유에 지은 집단주택은 요즘 유행하는 ‘필로티(1층을 짓지 않고 비워 활용하는 공간)’가 있을 정도로 모던하다. 하지만 서구의 아파트는 하류계층이 살면서 슬럼화했다. 한국에 본격적인 대단지 아파트가 생긴 건 64년. 대한주택공사가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지은 6층짜리 10개 동 642가구다. 당시 준공 후 입주율은 10%로 저조했다. “아파트는 불편하다”는 심리적 저항이 컸기 때문이다. “연탄보일러는 사람 몸에 좋지 않다”는 루머도 퍼졌다. 주택공사는 빈 아파트에 연탄보일러를 가동하고 실험용 쥐를 재우는 실험도 했다. 그래도 안 되자 결국 주택공사 건축부장이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잤다. 난방의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허의도, 『낭만아파트』).

이랬던 아파트가 ‘돈 되는 존재’로 돌변한 건 71년 반포 AID차관아파트가 생기면서다. ‘반포족’ ‘복부인’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후 너도나도 아파트를 소망했다. “저처럼 예쁜 공간에서 차를 마시면 남편과 나의 세계도 그렇게 환해질 것 같았다”(서하진, 『모델하우스』). 강남권 아파트 값이 급등하면서 “고급 아파트 거주는 현대 한국인에게 중산층 이상이 되기 위한 일종의 자격증, 혹은 ‘스펙(spec)’이 돼버렸다”(전상인, 『아파트에 미치다』).

그러던 아파트가 최근 중산층의 뒤통수를 치고 있다. 이른바 ‘하우스 푸어(house poor)’다. 하우스 푸어는 집을 가진 가난한 사람을 뜻한다.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빚을 내 아파트를 샀다가 금융위기 후 집값이 떨어져 큰 손해를 본 사람들이다. 하우스 푸어는 현재 198만 가구로 추정된다고 한다(김재영, 『하우스 푸어』). 그들에겐 아파트가 집이 아니라 짐이다. 아파트가 부른 비극이다. 정부는 DTI(총부채상환비율)를 완화하네 마네 갈팡질팡할 게 아니라 하우스 푸어가 왜 생겼는지 근본적인 진단부터 해야 한다.

기선민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