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진정한 친구 된 코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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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쓰나미(지진해일)가 남아시아를 덮친 직후인 지난해 12월 27일 스리랑카 신문들은 일제히 '일본 정부가 응급구조단 20여명을 보낸다'는 제목과 함께 일본의 지원 내용을 머리기사로 올렸다.

다음날인 28일에는 스리랑카 언론들이 '한국 구호단체가 온다'는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날 TV에선 스리랑카 복지부 장관이 한국 구호단체인 '선한사람들'의 대표를 만나 감사의 뜻을 표시하는 장면을 반복해 내보냈다. 선한사람들이 스리랑카에선 처음으로 지원 활동 승인을 얻었다는 점 때문에 주목받은 것이었다.

한국과 일본이 이곳에서 환영받은 것은 지원 규모가 커서가 아니다. 단지 다른 나라보다 먼저 지원하는 성의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차이는 있다. 일본에서는 순발력을 발휘한 곳이 정부였고, 한국에서는 민간단체라는 점이다. 한국 정부가 머뭇머뭇거리는 동안 다행히 민간단체가 스리랑카인의 마음을 붙잡은 셈이다.

국제 구호활동은 인도주의적 실천이자 상생.공존이라는 가치의 실현이다. 그리고 국가의 문화적.도덕적 수준을 보여주는 일이며 중요한 외교 활동이기도 하다. 우리 자신을 봐도 그렇다. 'MADE IN USA'라는 글자가 새겨진 구호물자를 보면서 자란 세대와 이른바 '오노 금메달 파문'에 분노한 세대가 미국에 대해 갖는 인상이 얼마나 다른가.

불행히도 한국은 그동안 스리랑카에 좋은 인상을 주는 나라가 아니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이곳의 한국 기업인들이 임금을 떼먹고 야반도주해 원성을 샀으며, 한국에서 일하는 자국민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소식이 반한 감정을 부채질했다.

이 땅에는 지금 100여명의 한국인 의료진과 구호 인력이 전염병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돕고 있다. 그리고 이곳 사람들은 그들에게 "이스투디, 코리아"(고맙습니다, 한국)를 외치고 있다.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이 어려울 때 돕는 진정한 친구로 새롭게 각인되고 있는 것이다.

천인성 사회부 기자
마타라(스리랑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