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피오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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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독일의 사회사상가 막스 베버는 인간사회가 어떤 목표를 향해 일정한 법칙에 따라 발전한다는 진화론을 거부한 사람이다. 그러나 독일 출신의 진보적 사회과학자·언론인 리하르트 뢰벤탈은 베버가 적어도 서구 사회는 혈연공동체에서 출발해 종교공동체와 도시공동체를 거쳐 국가공동체로 이행한 것으로 보았다고 해석한다.

혈연의 고리가 끊어질 때 근대가 탄생했다. 그것은 중요한 합리화의 과정이다. 혈연관계를 묻지 않고, 오히려 혈연관계를 끊어야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고 생각한 종교공동체의 등장도 근대를 불러들인 합리화의 과정이었다. 혈연공동체에서 출발한 유럽은 지금 국가공동체까지 뛰어넘어 국가연합으로 가고 있다.

어려운 베버와 뢰벤탈을 장황하게 들고 나온 것은 오늘의 우리 처지가 너무 딱하고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베버의 발전구도에서, 아니 꼭 베버나 뢰벤탈의 이론이 아니더라도 한국은 어디쯤 와 있는가.

우리는 아직도 혈연공동체의 단계에 주저앉아 있는 게 아닌가. 지금 우리 눈 앞에서 벌어지는 정치판의 싸움은 바로 혈연사회의 부족전쟁 같은 양상이다. 부족전쟁에서 지는 쪽은 인종청소를 면치 못한다. 그래서 한쪽 추장 김대중의 졸개들과 다른쪽 추장 이회창의 졸개들은 밀리면 지고, 지면 죽는다는 각오로 사생결단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무엇을 위한 싸움인가. 꼭 박영관 검사라야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를 제대로 수사할 수 있는가. 법무장관을 지낸 사람이 다시 법무장관에 앉아야 병역비리를 밝혀내고 이회창 후보를 낙마(落馬)로 이끌어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가.

문제의 인물들이 이중 삼중으로 얽힌 인연으로 봐서 병역비리의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국민의 '느낌'은 치지도외(置之度外)해도 좋은가. 朴검사, 또는 정부나 검찰의 다른 누군가가 국회에서 병풍(兵風)을 일으켜 달라고 주문했다는 이해찬 의원의 말은 무엇인가. 박주선 의원이 청와대 시절 김대업씨를 병역비리 수사에 참여시키는 일에 관여했다는 의혹은 또 무엇인가. 국민은 혼란스럽고 피곤하다.

검찰 인사와 이해찬·박주선 의원과 관련된 의혹은 민주당에는 한나라당에 싸움의 빌미를 제공하는 이적행위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파업 중인 근로자도 아니고 데모하는 학생도 아니면서 청와대로 몰려가 시위를 하고 검찰을 방문해 검찰을 압박하는 것도 언어도단이다. 그러나 민주당 스스로 그런 방식의 투쟁에 핑계를 제공한 셈이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강연에서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세가지 자질로 정열·책임감·판단력을 들었다. 그 중에서도 판단력이 중요하다. 판단력은 현실을 냉철하고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이다. 그러자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람과 사물을 보아야 한다. "정치인에게 거리를 잃는 것은 큰 죄악이다." 金대통령과 이회창 후보는 자식들을 대할 때 '거리의 변증법'을 무시해 오늘의 고난을 자초했다.

정치인에게 '거리의 변증법'을 처음으로 확실히 가르친 사람은 로마제국의 대정치가 키케로다. 그의 국가론 제6권은 '스키피오의 꿈' 이야기다.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을 격파한 명장 대(大)스키피오는 카르타고의 마지막 숨통을 끊은 손자 소(小)스키피오의 꿈에 나타났다.

손자를 하늘로 데리고 간 할아버지는 우주에서 바라 본 지구가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함을 보여주고 명성은 덧없는 것, 사리사욕 버리고 대중에게 봉사하면 내세에 영원지복(永遠至福)을 누린다고 타이른다. 할아버지는 말한다. "네 명성은 저기 보이는 저 코카서스 산맥을 넘지 못하고 저 갠지스강을 건너지 못한다."

김대중·이회창·노무현들에게 스키피오의 우주적 비전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새로운 정치신학(政治神學)이 필요하다. 그것은 베버가 새로운 신(神)으로 설정한 가치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전성우 교수, 한양대). 권력을 다투는 사람들은 스키피오의 꿈을 통해 숲을 보면서 나무를 다투라. 그게 큰 정치로 국민을 편안하게 만들고, 부족전쟁 시대를 마감하고 국가공동체를 넘어 국제화시대에 들어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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