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서울광장 스케이트장 '24시간 지킴이' 육근홍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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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하루종일 찬바람 맞으며 얼음가루와 씨름하는 게 보통 고역이 아닙니다. 하지만 시민들이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요."

지난 4일 오후 6시 서울시청 앞 스케이트장.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얼음을 지치는 100여명의 스케이터들 사이로 한 사람이 빙판 한구석에서 눈삽질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스케이트장 설치 및 관리전문업체인 CSS코리아의 기술담당 이사 육근홍(58)씨다.

그는 지난해 12월 24일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이 문을 연 이후 하루 24시간을 빙판과 함께 보내고 있다. CSS코리아는 서울시와 서울시체육회의 의뢰로 스케이트장을 설치한 뒤 빙판 관리.스케이트화 대여.장내외 질서유지 등의 업무까지 대행하고 있다. 육씨는 직원 및 아르바이트생 20명을 지휘해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2시간 동안 문을 여는 이 스케이트장을 관리한다.

"생각보다 할 일이 무척 많습니다. 매시간 스케이트 날에 깎인 얼음조각들을 쓸어내고, 파인 얼음판을 때우고, 문 닫고난 뒤에는 빙판 위에 다시 물을 채워 얼려야 하고, 1000여족에 이르는 스케이트화 날 갈아야 하고…. 밤중에 행인들이나 취객들이 얼음판에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경비까지 서야 합니다."

개장 이후 하루도 집에서 자본 적이 없다는 육씨는 4일부터는 그동안 묵었던 인근 호텔에서 나와 숙소를 빙판 옆의 텐트로 옮겼다. 육씨는 다음달 11일 폐장 때까지 이곳에서 머물 계획이다.

"내 평생 도심 한복판에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관리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해봤다"는 육씨는 "밤잠 제대로 못자고 고생해도 좋으니 우리 스케이트장이 뉴욕 록펠러센터나 파리시청 앞 스케이트장처럼 세계적 명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한양공고를 나와 20대 때부터 냉동설비 사업을 해온 육씨는 7년 전부터 동생이 운영하는 이 회사에서 빙판 설치관리 기술자로 일해왔다.

360평 규모의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은 현재 하루 평균 2000명이 찾고 있으며, 한번에 250명 이상은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매시간 이용객을 바꾸고 있다. 오후 피크타임에는 두세 시간을 기다려야 탈 수 있을 정도로 붐빈다.

글.사진=왕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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