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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에 주력할 부시 2기 북핵 해결 기회로 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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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2기 취임을 앞두고 차기 행정부의 대외정책 방향에 대해 다수 분석가들은 부시 대통령이 공세적 기조를 지속 혹은 강화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세계는 '더욱 부시다운', 모험적이고 공격적인 '부시 월드'가 되리라는 주장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부시의 일방주의가 다소 완화될 것이라고 관측한다.

부시 1기 행정부의 공세적 대외정책과 일방주의를, 자신의 힘을 신중히 계량치 않은 모험주의라거나 다자주의를 원천적으로 무시한 채 '제국의 의지'를 강요한 행위라고 치부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가. 부시의 이라크 개전은 미국의 군사력과 효율적 운용에 대한 냉철한 분석에 근거한 것이며, 일방주의는 사활적 국가이익의 요구에 따라 행사된 것이라고 보는 게 더 현실적이 아닐까. 부시의 미국은 사활적 국익이 걸려 있을 경우라 할지라도 군사력을 통한 해결이 어렵거나 그것이 지나친 희생을 요구할 때 언제라도 외교적 접근으로 유연하게 돌아설 준비가 돼 있다고 본다.

즉 부시 2기의 대외정책 기조가 1기의 지속 혹은 추세 강화라고 보는 건 너무나 단선적인 예측이라는 것이다. 몇 가지 근거가 있다. 먼저 미군의 장기간 이라크 점령과 대규모 주둔은 군사력 운용의 과부하를 의미하는 전력투사의 '오버스트레칭(overstretching)' 현상을 초래했다. 상비군만으로는 운용 가능 병력이 모자라 예비역 및 주방위군까지 이라크에 배치돼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미 육군이 전통적으로 추구해 오던 '3등분의 법칙'(첫째 전투단위가 임무 중에 있으면 둘째는 회복 중에, 셋째는 준비상태에 있도록 예비하는 체제를 의미)을 지키기가 어렵게 됐다.

다음으로 부시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지지율 하락이 초래하는 국내 정치적 취약성의 증가다. 이라크의 제헌의회 총선일(1월 30일 예정)이 다가오는 가운데 파괴.살상 행위들은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모술 인근 미군기지 식당의 자살폭탄 테러로 최대 규모의 미군 사상자가 발생한 것을 비롯해 계속 늘어나는 미군의 희생은 부시의 이라크 정책 및 직무수행 전반에 대한 지지율을 낮추고 있다.

또 악화되고 있는 미국의 경제 지표들, 특히 미국의 경상.재정적자가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해 부시 행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부시 월드' 비전에 대한 공화당 내부의 견제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부시 팀이 물러나도 공화당의 간판은 내려지지 않는다. 모험의 시기가 아니라 성찰의 시기임을,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전쟁의 성과를 국민에게 가시적으로 보여줘야 공화당은 다음 선거를 기약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부시의 몫이기에 앞서 공화당의 필수과제인 것이다.

과잉 전력투사의 지속으로 미국의 근육은 긴장돼 팽팽하지만 너무 얇다. 럼즈펠드를 비롯한 미 국방 지도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군 변혁(MT)과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GPR)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이것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부시는 더 이상의 오버스트레칭이 부담스럽다. 네오콘을 비롯한 부시 주변의 자문그룹은 이 점을 잘 인지하고 있다.

이러한 기조는 북핵 문제의 진로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시의 전략가들은 (최소한 조정 기간 중에는) 사태 진행의 통제.관리가 쉽지 않은 무력 옵션 대신 지난 4년 동안 유지해 온 북한 위협의 '보존과 차단'이라는 전략을 지속하는 방안, 입장을 완화해 외교적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방안, 북한의 핵무장을 방관해 동아시아의 군비경쟁을 부추기는 방안 등 세 가지 선택을 놓고 자기 그룹의 정치적 이득과 국익을 저울질하며 (더하여 북한 내부 상황까지 주시하면서) 긴 고민에 빠져 있다.

부시로서는, 북핵 문제를 군사력 대신 외교적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전환의 훌륭한 계기이며 이라크전에서 달성하지 못한 전략 목표들을 보상해주는 카드가 될 수 있다.

총선 후 이라크 상황이 더욱 악화해 부시의 국내 정치적 취약성이 증가할수록 북핵의 외교적 해결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북한과 남한은 모두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 부시 역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재임 시기 '드물었던 외교적 승리들' 중의 하나로 추억하며 만년을 보내기를 기대한다.

강봉구 한양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