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떠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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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친구들이 자꾸 다른 학교로 떠나서 속상해요."

서울 수서초등학교 6학년 鄭모(12)양은 개학(26일)이 반갑지 않다. "올 들어서만 학급 친구 3명이 전학갔는데, 개학하면 또 한명이 옆 학교로 가요."

한국의 교육열 1번지 강남학교군(옛 8학군)에 1994년 43학급으로 개학한 이 학교는 현재 24학급(특수학급 2학급은 제외). 매년 2~3학급씩 줄어 8년 만에 학급 규모가 처음의 절반 정도가 됐다. 학생들이 너도나도 떠나기 때문이다. 선망 대상인 강남학교군으로선 의외다.

"교육여건 때문이지요. 강남이라고 다같은 강남이 아닙니다." 자녀를 인근 학교로 옮겼다는 李모(40)씨는 "영구임대와 민영아파트 간 교육열의 차이가 원인"이라고 말했다. 수서동에는 일반분양분인 민영아파트·주택 3천여가구와 상대적으로 생활형편이 어려운 영구임대아파트 4천여가구가 혼재돼 있는데, 일부 학부모가 교육환경을 들어 자녀를 일원동과 대치동의 학교로 전학시킨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초등학생 수가 감소하는 추세지만 이 지역은 줄어드는 폭이 서울시 평균보다 훨씬 크다"며 "전출입이 안되는 영구임대아파트의 지역적 특성을 감안해도 전학생이 상당히 많은 편"이라고 했다.

이러다 보니 학교에 남는 아이들은 상대적 소외감에 시달린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6학년 朴모(12)양은 "1학기에 같은 반 친구가 일원동으로 전학했다. 나도 친구들을 따라가고 싶다. 그러나 부모님은 이사할 수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위장전출로 전학=상당수 학부모는 중·고교 배정을 염두에 두고 위장전출을 하고 있다. 고교는 전산 추첨으로 배정하지만 이 지역은 서울 송파구·경기도 성남시와 인접해 있다는 이유로 학생 대부분이 수서초등학교를 거쳐 수서중·세종고교에 집중 배정되기 때문이다.

金모(중3년)군의 어머니 朴모(44)씨는 3년 전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일 때 주소지만 인근 일원동의 한 아파트로 잠시 옮겨 일원동 소재 중학교에 보냈다. 고등학교 배정을 받게 된 올해 朴씨는 金군의 주소지를 다시 옮겨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지난 2월 수서동사무소는 관내 만 7세 취학 대상 아동 1백33명에게 취학통지서를 발송했다. 이 가운데 수서초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고작 90여명이다. 대부분의 학생이 다른 초등학교로 빠져나간 것이다.

이같은 '탈(脫)수서 위장전출'이 심화되자 상대적으로 콩나물 교실이 된 인근 지역 초등학교들이 전학 학생의 주소지 확인에 나서기도 한다.

수서초등학교에 다니던 李모(11)양은 최근 주소를 일원동 할머니 집으로 옮겨 다른 초등학교로 전학했다. 그러자 새 학교의 담임선생님이 "같은 반 학생들을 집으로 초대해 네가 살고 있는 곳을 보여줘라"고 했다. 수서동에 사는 李양의 부모는 할머니 집에 친구들을 초대, 그곳에서 사는 모습을 연출했다.

◇교육청에 집단민원=수서지역 학부모들은 지난 7월 관할 교육청에 "불평등한 이 지역 중·고교의 배정방식을 시정해 달라"며 진정서를 제출했다.

학부모들은 "평준화 지역인데도 인근 학생들을 섞어 배정하지 않고 임대아파트를 포함한 일부 지역 학생들만 특정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집중 배치하는 것은 균등한 교육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며 "다른 중학교로도 배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학부모들은 "수서지역이 고립돼 지역 주민과 위화감만 조성하는 이런 현상을 그릇된 교육열로 매도하지만 말고 주민들이 서로 돕고 어울려 살아가는 방향을 제시해 주었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한 학부모(43)는 "임대아파트 때문에 자녀가 공부하는 데 불리하다는 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겠지만 잘 사는 아이들이 계속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거나 주소만 옮겨 전학하는 현상이 계속되면 이 지역 학교는 임대아파트 아이들만 남게 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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